만주침공 이후의 검열과 민간신문 문예면의 증면, 1929-1936
The Japanese invasion of Manchuria, Censorship in Korea, and the Page Increase of Private Newspaper's ‘Munyemyun’ (1929-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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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1930년대 가장 중요한 문학발표지면이었던 민간신문의 문예면을 기업화된 자본이 장악하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그 자본은 권력의 검열에 민감하게 반응하였다는 점은 그다지 주목된 바 없는 사실이다. 이 글은 문예면 증면의 원인과 효과를 검열 및 자본과의 관련 아래 살펴봄으로써 이 시기 문학의 존재조건을 밝히고 그 의미에 대한 재해석을 시도한다. 문예면은 24년 독립되어 30년대까지 지속적으로 증면되었는데, 그 증면의 원인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만주침공을 계기로 일본경제는 소화공황에서 벗어나 활황기에 들어서는데, 조선 민간신문의 광고수요 또한 폭증한다. 광고를 싣기 위해 증면을 단행하는데, 검열은 지속적으로 강화되었으므로 탈정치적 지면으로서 문예면의 증면이 선택된다. 문학 원고의 수요가 급증하였으니 발표 작품 역시 급증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말해서, 30년대 문학작품 총량의 폭증은 일본의 만주침략에 힘입은 전쟁 고원경기의 초과이윤의 일부가 언론자본을 경유하여 조선 작가들에 이전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검열권력은 ‘시사 정치’를 집중적으로 억압하면서 ‘학술 기예’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느슨했는데, 20년대 중반까지 한국의 민간신문은 政論性을 중요하게 취급했지만 지속적으로 위축된다. 점차 기업적 속성이 강해진 신문자본은 검열 우회와 이윤 확보를 위해 문예면 증면을 선택했으며, 문예면 담당기자 역시 카프나 민족주의자에서 해외문학파로 교체한다. 문학 또한 억압된 정치담론의 대리보충물로서의 성격이 약화되며, 탈정치적 문학이 가치 있는 문학으로 평가되기 시작한다. 정론성의 약화, 그리고 급격한 문예면 증면에 따른 기존 문인의 승인권의 약화에 대해 대부분의 작가들은 비판적이었지만, 이미 문학유통의 매체가 인쇄자본에 의해 장악된 상황이었으므로 그 저항은 명백한 한계가 있었다. 자본은 내부적 검열을 시행했고, 작가들은 신문사의 ‘전속 작가’로서(주로 해외문학파), 또는 신문자본이 게재를 거부하지 않는 문학을 산출하는 ‘원료 공급자’로서 생존했다. 1930년대에 대한 평가는 첨예한 논란의 대상이거니와, 대체로 ‘한국근대문학의 양적 질적 황금기’라는 평가가 통설적이다. 하지만, ‘양적 황금기’란 전쟁 고원경기와 검열 때문에 생긴 문학 수요의 급증에 따른 것임을 이 글을 통해 밝혔다. ‘질적 황금기’라는 평가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다루기로 한다.
Abstract
This paper discusses the cause and outcome of the continuous page increase of ‘Munyemyun(section of literature and art; 文藝面)’ of private Korean newspapers in the 1930's(1929-1936). ‘Munyemyun’ was the most highlighted literary media in that time, but it was little known that ‘Munyemyun’ was dominated by capitals, and those capitals responded sensitively to the Japanese censorship power. This fact calls for the need of a reinterpretation of literature in the 1930's now regarded as the ‘quantitative and qualitative golden era’ of modern Korean literature. First, the ‘quantitative golden age’ came from the drastic increase in the demands of literature. In other words, the phenomenon resulted from the flow of vitalization of Japanese economy due to invasion of Manchuria → parts of the returning surplus were redirected to Chosun → soaring of commercial advertisement of newspaper → emerging importance of page increase for advertisements → page increase in Munyemyun amid enforced wartime censorship → cultivation of work pieces due to increased demand for literary papers. The ‘qualitative golden age’ derives from the change in the standards with which literature was evaluated. Censorship power mainly suppressed political arguments and was relatively lenient on literary arts so the Korean public newspapers perceived politics as a vital value up until the 1920's but the idea later diminishes. Newspaper capitals gradually featured more vivid corporate attributes and decided to increase the pages in Munyemyun to secure more profit and bypass censorship for which they replaced patriotic Munyemyun reporters with international literary figures. Literature functioned as a replacement for the suppressed politics but reinforced censorship diminished its attributes as we can assume extra-politics as a virtue of literature. Most authors in the 1930's were discontented with such atmosphere and few resisted in various ways but there were certain limits as the medium of literature was predominated by the printing capital. The principles of art and aesthetic became the mainstream and were reproduced under an authoritarian government after liberation as perceiving the 1930's as the 'qualitative golden age is one of the outco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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