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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제1차 5개년계획(1957-1961년)의 군중 동원 - 한계 극복과 사회주의 건설의 동력 -

Mass Mobilization during North Korea’s First Five-Year Plan(1957-1961): Overcoming Limitations and Driving Force of Socialist Constru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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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논문은 북한의 제1차 5개년계획(1957-1961년) 추진과정에서 군중 동원의 역할을 분석하였다. 북한은 1957-1961년 제1차 5개년계획을 추진하면서 군중 동원을 주요 동력으로 활용했다. 당시 북한은 소련 등의 원조가 줄어든 상황에서 자립경제 건설을 위해 노력했다. 조선로동당은 계획 수립 단계부터 노동자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대중적 증산경쟁운동을 전개했다. 1957년부터 시작된 대중운 동은 1958년 ‘천리마운동’으로 발전했다. 노동자들은 자발적으로 증산 의무를 설 정하고 실천했다. 당은 군중노선 관철을 위해 간부들의 현장 접근을 강화하고, 통계 활용과 계획규율을 강화했다. 1959년에는 ‘천리마작업반운동’을 시작하여 생산혁신과 함께 노동자들의 의식 개조를 추구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북한은 1959년 6월 말 5개년계획의 공업부문 목표를 조기 달성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지속된 고강도 노동으로 인한 부작용도 있었다. 조선로동당은 1960년을 ‘완충기’ 로 설정해 긴장을 완화하고자 했다. 결과적으로 북한의 군중 동원은 당의 지도와 노동자들의 자발성이 결합되어 계획 목표 달성에 기여했지만, 동시에 노동강도 증가와 생활수준 정체 등의 문제도 낳았다.

Abstract

This study analyzes the role of mass mobilization in North Korea’s implementation of the First Five-Year Plan (1957- 1961). North Korea utilized mass mobilization as a key driving force while pursuing its First Five-Year Plan from 1957 to 1961. At the time, North Korea was striving to build a self- reliant economy in the face of reduced aid from countries like the Soviet Union. The Korean Workers’ Party encouraged worker participation from the planning stage and launched mass production competition movements. The mass movement that began in 1957 evolved into the ‘Chollima Movement’ in 1958. Workers voluntarily set and implemented increased production obligations. To implement the mass line, the party strengthened the field presence of cadres and reinforced the use of statistics and planning discipline. In 1959, the ‘Chollima Work Team Movement’ was initiated, pursuing production innovation along with workers’ ideological reform. As a result of these efforts, North Korea announced in late June 1959 that it had achieved its industrial sector goals ahead of schedule. However, there were also side effects from the sustained high-intensity labor. The Korean Workers’ Party designated 1960 as a ‘buffer period’ to ease tensions. Consequently, North Korea’s mass mobilization contributed to achieving planned goals by combining party guidance with workers’ voluntarism. However, it also led to problems such as increased labor intensity and stagnation in living standa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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