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보의 교유관계망을 통해 본북송(北宋) 신유학 수용 양상
he Neo-Confucian Thoughts Connecting with the Neo-Confucianism of North Song Dynasty through Lee, Gyu-bo’s Companion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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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무신난 이후 원주에 은거 중이던 권돈례를 중심으로 당시 무신들의 탄압을 피하여 유학자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박인석도 그 중의 하나였다. 이 당시 죽림고회 구성원 중 한 사람이었던 임춘 또한 권돈례를 스승으로 모시고 그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임춘과 권돈례는 고려중기의 유학자 권적에게 그 학맥이 연결되는 인물들이었다. 그런데 죽림고회 좌장이었던 오세재와 이규보의 忘年友, 오세재의 장인 이지성과 박인석 부친의 교유, 박인석과 이규보, 안치민의 교유를 통하여 고려중기 신유학풍이 이어지고 있는데, 특히 당말 북송에서의 한유와 구양수의 고문정신이 수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경향성은 이규보가 자신의 후임으로 천거했던 후학 최자가 문(文)이 도를 추구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문(門)의 경우에 해당한다고 하여 북송대 신유학자들의 ‘문이재도론’과 상당한 유사성을 보이고 있는 것이 주목되었다. 무신난 이후 북송 신유학 수용과 함께 고려 전기 천을 주재자로 인식해 온 천관에도 변화가 수반되고 있었다. 예컨대 『의종실록』을 편수한 김양경이 당나라 강징의 상소를 인용하면서 천견사응설을 부정하고 있는 구양수의 비판에 동조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김양경(후에 인경으로 개명)은 명종 24년에 급제하였는데 이규보와는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김양경과 활발한 교류관계를 맺었던 이규보의 천관에서도 이러한 변화를 볼 수 있다. 이처럼 당말 북송대 발흥했던 신유학의 영향으로 김양경과 이규보의 천관은 동중서의 천인감응설에서 벗어나 새로운 단계의 신유학적인 이법적 천(天)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최해는 자신의 「동인지문 오칠」에서 비록 장원급제자는 아니었지만 이규보의 활동이 가장 두드러진 사실과 이규보를 중심으로 동년과 후배들이 서로 사대부 의식을 갖고 무신정권기에 문인의 입지를 키워 나아간 사실을 특기하고 있다. 하지만 12세기 후반의 신흥사류의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이규보나 그의 교유관계망에 있던 임춘 등의 자아인식과 13세기 후반~14세기 전반을 통과하는 신흥사대부층의 의식의 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 최해의 자아인식에는 간격이 있었다. 전자의 그것이 사상적으로 잡박한, 따라서 아직 불철저한 것이었다면, 후자의 그것은 이른바 노(老)․불(佛)의 이단에 대한 공격적 지향을 명확하게 정립하면서 사회와 인간에 대해 새롭게 철학적, 윤리적으로 해석함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었다.
Abstract
This article try to investigate the Neo-Confucian thoughts connecting with the Neo-Confucianism of North Song Dynasty through Lee Gyu-Bo's companionship. Jeonghak(正學) was the result of political and thought movement that Bum-jung-um(范仲淹), Gu-yang-su(歐陽修), Sa-ma-gwang(司馬光) and Wang-an-sek(王安石) have took the lead in the middle period of the North Song Dynasty and regarded as an origin of Jeungjuhak(程朱學), the main current of Song Confucianism(宋學). Then, the revival movement of New Confucianism rose into power in Goryeo Confucian world at this time. By the way, at this time Goryeo sought to understand the Neo-Confucianism including the Wang-an-sek’s New-Law(新法) that made a sudden rise in North Song Dynasty. But the new trend of confucianism in the middle period of Goryeo Dynasty, the bounds of confucianism in the middle of Goryeo Dynasty that received the Neo-Confucianism of North Song Dynasty, was that the thought of Neo-Confucianism not gave concret expression to the daily life. The new trend propelled the regime reform, and bureaucrats who were aware of Neo-Confucianism confronted against the maternal relative power but these were estranged from the daily life which ate and drank. Also, these bureaucrats were reformative in the Royal Court but not turned their eyes their value of daily life. Therefore, basing on this reason, the author called them new bureaucrats, and considered them as the nobility of renowned line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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