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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초기 王城의 위치와 國內 遷都

Location of Early Koguryo's Royal Castle and Relocation to Gungn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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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건국 당시 주몽은 고력묘자고분군이 있는 비류곡 홀본의 비류수 가의 초막에 거처했다. 재위 4년에 홀본 서쪽 성산 위에 성곽과 궁실을 축조했다. 지금의 오녀산성이다. 환인 육도하 일대에 있던 졸본부여는 주몽의 세력기반이 되었다. 유리왕은 자신의 세력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한 끝에 국내 지역을 확보했다. 유리왕대 국내로의 천도 사실을 의심하기도 하지만, 이 왕대에 천도 관련 기사가 가장 많이 나오므로 이를 부정할 수는 없다. 국내위나암의 국내는 지금의 집안 지역 전체를 지칭한 것이다. 위나암은 재원향 일대이고, 위나암성은 지금의 패왕조산성 자리에 축조된 산성이었을 것이다. 대무신왕 11년 요동태수 군대는 국내 왕성까지 들어가지 못하고 위나암성을 포위하고 있다가 물러갔다. 계루부는 고구려의 발전과정 속에서 변화되고 정립되었다. 계루부는 왕실세력과 국내 지역 사람들, 천도 당시와 이후 이주해온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계루부의 범위는 현재 집안시 일대와 시조묘가 있는 졸본 지역 일부가 포함되었을 것이다.

Abstract

When Jumong founded the kingdom of Koguryo, he resided in a thatched cottage beside the river Biryusu at Holbon of Biryugok, the valley where the Goryeongmyoja tombs are located. Into the fourth year of his rule, he built a fortress and royal palace upon the mountain Seongsan to the west of Holbon, now known as Onyeosanseong. Jolbon buyeo at Hwanin around the Yukdoha basin became the base of Jumong's power. Yuriwang, the second king of Koguryo, strived to create a base for his own power and managed to secure the Gungnae region. Some question the fact that Koguryo relocated its capital to Gungnae during the reign of Yuriwang, but it's a fact that can hardly be contradicted considering that most accounts of the relocation come from Yuriwang's reign. Gungnae of Gungnae winaam refers to the entire Ji'an area of today. Winaam must have been today's Jaewon (Caiyuan) area and Winaamseong a mountain fortress built where Paewangjosanseong is now situated. In the eleventh year of the reign of Daemusinwang, the third king of Koguryo, the Liaodong governor's army failed to advance into the capital of Gungnae and besieged Winaamseong before retreating. The tribe Gyerubu established itself while experiencing changes over the process of Koguryo's development. Members of the royal family, locals of Gungnae, and those who settled down at Gungnae when or after it became the capital of Koguryo came to form Gyerubu. The location and domain of Gyerubu almost completely corresponds that of the city of Ji'an today, which is also likely to include part of the Jolbon area where the progenitor's tomb 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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