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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전반 함경북도 戶籍 자료를 통해 본 어느 一家의 移住史와 土奴婢

Gongju Yi Family’s History of Emigration and “Tonobi”(土奴婢) Appeared in the Family Register in Hamgyeongbukdo in the Early 19th Century Owned by Yanbian Museum(延邊博物館), 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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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이 논문은 중국 吉林省 延吉市 延邊博物館에 소장되어 있는 古文書 자료 1점을 통해 두 가지 역사적 사실을 살펴본 것이다. 하나는 조선 후기 조선인의 間島 이주 사실이며, 다른 하나는 함경북도 지역에서만 존재한 ‘土奴婢’의 실체 및 성격이다. 고문서 자료는 1822년 12월, 함경북도 明川에서 거주한 李蓍衍이 관아로부터 발급받은 准戶口이다. 특히 이 준호구 자료는 현재 한국(남한 지역)에 소장된 함경북도 지역의 호적류 고문서 자료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아울러 조선시대 호적 자료 중 ‘土奴婢’가 발견되는 자료는 현재로서는 이 자료가 유일하다. 이시연은 公州 李氏로 이들 일가는 先祖 李謙이 燕山君 때 함경북도 鏡城으로 유배되었다가 中宗反正으로 解配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그 곳에서 거주하였고, 이후 그 후손들이 鏡城을 비롯하여 明川, 城津, 吉州 등에서 수백 년 이상 거주하면서 함경북도의 양반가문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특히 李麒壽・鵬壽 형제가 임진왜란 때 경성에서 의병을 일으켜 활약하였고 후에 벼슬이 추증되고 彰烈祠에 配享됨으로써 공주 이씨는 경성의 명문세족으로서의 지위를 더욱 견고히 하였다. 그러다가 이시연의 5世孫인 鍾衡 때 두만강을 건너 중국 延邊의 和龍으로 이주하였던 것인데, 族譜에 기재된 내용으로 볼 때 이주 시기는 일제강점기인 대략 1930년대로 추정된다. 중국 연변박물관에 이시연의 호적 자료가 소장된 배경에는 이들 일가의 間島 지역으로의 이주 역사가 있었던 것이다. 한편, 이시연의 준호구 자료에는 소유 노비가 총 6口(奴 1口, 婢 5口)가 등장한다. 그런데 이들 소유 노비에서는 세 가지 특징이 발견된다. 첫째, 이들 6口의 노비가 모두 하나의 가족 관계로 이루어져 있었다는 점. 둘째, 5口의 婢 모두가 良人과 혼인을 했다는 점. 셋째, 소유 노비가 모두 ‘土奴’와 ‘土婢’로 기재되었다는 점 등이다. 비록 그 사례 건수가 적어 단언하기는 어려우나, 모든 婢가 良人과 交婚하였던 점은 여타 지역의 양상과는 다른 이곳 함경북도(또는 明川)만의 독특한 양상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토노비는 함경북도에 거주하는 私奴婢에게만 붙여진 명칭인데, 더 중요한 것은 소유주 역시 함경북도에 거주하는 토착인이어야만 그 소유 노비를 토노비라 할 수 있었다.

Abstract

This paper traces two historical facts: One is Korean immigration to Gando(間島) in the late period of Joseon Dynasty, the other is what “Tonobi”(土奴婢) was, which existed in Hamgyeongbukdo(咸鏡北道) only. An ancient document owned by Yanbian Museum(延邊博物館), China, is utilized. It is a Junhogu(準戶口) issued on December, 1822, that Yi Siyeon(李蓍衍), resident in Myeongcheon(明川), Hamgyeongbukdo, got from the government office. It is highly significant, considering South Korea owns few family register issued in Hamgyeongbukdo. Also, for now, it is the only material contains Tonobi among the family registers in the Joseon Dynasty era. The root of Gongju Yi’s(公州 李氏) family in Hamgyeongbukdo traces back to Yi Kyeom(李謙). He had stayed in Gyeongseong(鏡城) since he was exiled there in the reign of Yeonsangun(燕山君). His descendants had lived in Hamgyeongbukdo area such as Gyeongseong, Myeongcheon, Seongjin(城津) and Gilju(吉州), for more than several hundred years. Among them, Yi Kisoo(李麒壽) and his brother, Yi Boongsoo(李鵬壽) raised an army voluntarily in Gyeongseong when Japanese army invaded Joseon in 1592. This made the family a prestigious noble family in the area. Afterward, Yi Jonghyoung(李鍾衡), great-great-great-grandson of Yi Siyeon, immigrated to Helong(和龍), Yanbian(延邊), China. It seems that it was around 1930s that he and his family crossed Duman River, considering their family record. That is why Yanbian Museum owns Yi Siyeon’s Junhogu. According to the material, Gongju Yi family owned six private servants(私奴婢), one male and five females. There are three characteristics. First of all, they were all family. Secondly, all of females married a commoner. Thirdly, male servant was recorded as “Tono”(土奴) and females were “Tobi”(土婢). Tonobi(土奴婢) was a title given to private servants in Hamgyeongbukdo. And more importantly, they were regarded as Tonobi only if the owner was a native of Hamgyeongbuk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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