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숙종 대 재궁가칠(梓宮加漆)의 시행과 의미
The Practice and Implications of the Lacquer of Jaegung In-jo’s Reign to Suk-jong’s Re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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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재궁가칠이 국상 의례로 편입되는 과정을 사가례와의 관련성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먼저, 조선후기 현실적·예학적 필요에 따라 국상의 치벽(治椑)에 사가의 치관(治棺) 방식이 적용되면서, 재궁가칠이 시작될 수 있었다. 치벽은 황장 전판(全板)의 사용을 원칙으로 했지만, 구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17세기에는 치관과 같은 연판의 방식이 허용되었다. 『국조오례의』에서 치벽은 덮개판에 은정(隱釘), 바닥판에 철정(鐵釘)을 사용했고, 치관은 철정만을 사용했다. 이후 고례와 시속을 따라 치관에서 철정을 사용하지 않았고, 18세기 『국조상례보편』의 치벽 역시 철정을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수정되었다. 또한 국상의 치벽은 왕의 즉위부터 진행되는 반면, 치관은 사망 이후 시작되었다. 따라서 사상에서는 관의 견고함과 광택을 위해 대렴 후 발인 전까지 가칠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인열왕후상에서는 사가례의 가칠 방식을 적용하여 재궁가칠을 시작했는데, 후종(厚終)의 의미가 강조되었다. 사가례에 익숙했던 인조의 의지와 결정에 따라 재궁가칠이 국상 절차에 추가되었지만, 아직은 조종전례(祖宗典禮)로 간주되지 못했다. 효종국상 시 부판재궁((附板梓宮)의 사용은 재궁가칠이 정례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효종상의 재궁가칠에서 인열왕후상의 전례는 중요한 근거가 되었고, 현종은 재궁가칠을 통해 재궁을 보완하고 곡림의에 친림하여 자신의 효를 표현하는데 적극적이었다. 이 때 마련된 ‘재궁가칠시곡림의(梓宮加漆時哭臨儀)’는 재궁가칠 전에 곡림하는 절차가 중심이었고, 현종이 곡을 하고 여차(廬次)로 돌아간 후에 본격적인 재궁가칠이 시작되는 방식이었다. 이어 효종비 인선왕후상에서는 왕비의 내상(內喪)에 맞게 재궁가칠 의례가 정비되었다. 총호사 이하의 위치가 빈전 ‘계단 아래’에서 ‘합문 밖’으로 수정되었고, 아들인 왕의 역할이 중시되면서 현종이 가칠을 감독한 후 여차로 돌아가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내상의 재궁가칠은 왕비의 공간인 빈전에 칠공(漆工)이 드나든다는 점에서 내외의 구분에 어긋나는 것이었지만, 효와 후종의 원칙을 근거로 시행되었다. 숙종 대 현종상의 재궁가칠에서는 칠포무익론에 따라 칠포를 사용하지 않았다. 이것은 실제로 개장(改葬)을 시행했던 사대부 관료의 경험적 지식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러나 『국조오례의』의 규정 및 효종·인선왕후 국상의 재궁가칠 방식에 어긋난다는 점은 조종전례를 중시하는 국가 의례에서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였다. 숙종 대 4번의 내상을 통해 내상 의례가 정비되면서, 내상의 재궁가칠에 대한 규정 역시 구체화되었다. 특히 장생전재궁의 사용에 따라 은정가칠과 전체가칠 의례를 구분하였고, 현종상에서 폐지되었던 칠포를 다시 사용하여 후종의 의미를 강조하였다. 인선왕후상에서 시작된 ‘곡림-가칠-환여차’의 절차는 신하들이 관여하기 어려운 내상의 특징에서 비롯된 것이었지만, 숙종상 이후에는 국왕의 대상(大喪)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Abstract
The process of lacquer of jaegung being incorporated into the national funeral was focused on its relevance to the family rituals. In the late Joseon Dynasty, the style of manufact of coffin in the family rituals was applied to the national funeral in accordance with practical and ritual needs, and the re-rubbering could begin. In Queen In-yeol’ funeral, lacquer of jaegung was started by applying the family ritual's method, It was perceived to be appropriate for the method of generous funeral. A new procedure has been added to the national funeral according to the will and determination of King Injo, who was familiar with the family rituals, but has yet to be considered a steering precedent. The use of the connected jaegung in Hyojong' funeral served as an occasion for the regular application of the lacquer of jaegung. The precedent of Queen Inyeol's funeral served as an important basis and King Hyeonjong was active in expressing his filial piety by supplementing the lacquer of jaegung. In addition, the lacquer of jaegung for Queen Inseon were arranged in accordance with the queen's funeral. The position below the rank of the chonghosa has been modified from the mortuary 'below the stairs' to 'out of the hapmun'. As the role of her son, King Hyeonjong, was valued, he supervised the lacquer of jaegung and returned to yeocha. King Sukjong didn't use the lacquer cloth according to the claim that it is useless in the national funeral of King Hyeonjong. This was based on the empirical knowledge of the nobility officials who conducted frequent moving a grave. However, the fact that it was against the regulations of Kukchooryei and the methods of lacquer of jaegung in the funeral of King Hyojong and Queen Inseon came as a burden. During the four rounds of the queen's funeral, King Sukjong reorganized the queen's funeral rites, and the regulations of lacquer of jaegung were also formulated. The readjustment of rites was carried out in a way that was appropriate for the practice of filial piety, a universal ethics, rather than the difference between the national funeral and the family Fune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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