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세기 기후 위기와 고려 국왕의 대응
The climate crisis in the 12th century and the King of Goryeo's respo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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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온난 가운데 최저점(V계곡)인 12세기는 동아시아 전역에서도 기후의 동시성을 띤다. 12세기 동아시아 전역의 냉해는 기층민의 재생산기반까지 잠식하였고, 국가적 질서의 해체와도 맞물려 이무렵은 한ㆍ중ㆍ일 삼국 모두 새로운 정권이 태동하였다(文武 교체). 중국에서는 한랭으로 곡물생산이 불안정하던 금의 남하로 인해 북송이 멸망하였다. 일본도 기후재난을 겪은 뒤 막부정권이 수립된다. 고려의 예종ㆍ인종ㆍ의종ㆍ명종대에도 가뭄과 건습ㆍ한랭으로 곡물의 낱알이 불균하고 물가가 상승하는 사회ㆍ경제적 위기를 경험하였다. 12세기 전후 한랭을 시사하는 물후자료는 계절용품으로 얼음과 시탄(숯)이 있다. 한랭기 동안에는 따뜻한 봄과 초여름에도 얼음이 얼었다. 얼음은 중앙관사나 왕실에서 공ㆍ사의 연회나 음식의 보관, 상장례 때 시신의 부패를 방지하는 용도에 쓰일 필수적 계절품이다. 얼음의 저장과 채빙을 관리하는 직은 내원사ㆍ상림령이다. 채빙처 역할을 한 후원 정원수의 조성은 대개 12세기 직전 상대적으로 고온다습하던 현종ㆍ숙종 전후 활발히 추진된다. 후원은 국왕이나 관인의 피서ㆍ휴양처 정도로 조성된 것일테나, 이후 국왕과 신료간 만남이나 군사활동의 장소로 적극 활용되었다. 후원에서 잔치를 명분으로 한 公私의 정치적 결연은 대부분 12세기와 14세기에 집중된다. 추위가 심하던 인종 이후 난방용품인 숯(시탄)이 시장에서 거래되고, 숯이 부족해지자 물가가 올랐다. 숯의 수요가 늘자 그 공급처인 도심 숲은 파괴되었다. 숲에서 서식하던 야생동물은 삶터를 잃고 종종 도심에 출몰하였다. 인간에게 야수는 큰 위협이었다. 기후재난에 대처하는 고려 국왕의 자세는 소극적으로는 자신을 가혹하게 다루어 근신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궐내 바깥행차를 금하거나 감선하는 극도의 자기절제를 행하며 비가 올 때까지 실내에 머물지 않고 실외에서 기우제를 치른다. 검약ㆍ절제를 표하기 위한 경제적 조치로서 때로는 시전을 옮기거나 철시한다. 수도를 벗어난 외방 행차는 국왕의 영토 확장방식이자 사방천하를 관할하는 천자의 지배력을 확인하는 성방 행위이다. 행행은 개경을 국토의 중심에 두고 동(경주)ㆍ서(서경)ㆍ남순(남경) 방향으로 주기적으로 행해졌다. 태조는 훈요십조에서 水德인 서경을 중히 여기라 했다. 수덕의 시기는 10월이라 적어도 현종대까지는 서경 순행의 주기는 이 달에 맞춰졌다. 숙종대 서순은 7ㆍ8월로 火德의 기운이 강한 한여름에 행해졌다. 예종ㆍ인종대의 서순은 그보다 훨씬 빨라 木德의 기운이 강한 봄의 2ㆍ3월에 이루어졌다. 행행주기와 장소를 놓고 본다면 서순의 시기는 국초부터 문종대 9ㆍ10월, 숙종대 7ㆍ8월, 예종ㆍ인종대 2ㆍ3월 주기로 빨라지고 있다. 남순의 시기는 문종대 2ㆍ3ㆍ5ㆍ10월로 불규칙하다가, 숙종대 2ㆍ3월, 예종대 3ㆍ8ㆍ9월, 인종대 8ㆍ9ㆍ10월로 정례화되고 있다. 예종ㆍ인종대를 거치면서 남순의 주기는 점차 10월로 고정되고 있다. 앞서 서순의 주기가 2ㆍ3월로 지정되던 것과 반대로 남순의 주기는 10월로 바뀌어가고 있다. 전기 이래 11세기 후반 12세기에 서순ㆍ남순의 주기가 완전히 역전된 데는 온냉교차ㆍ한랭이라는 기후 변화도 있을 것이다.
Abstract
In the Middle Ages, when the original hierarchy of the status system penetrated, the management of the system of governance rested with the monarch. At this point, it is expected that it will be meaningful to examine how the landscape and operation of the city and Multiple capitals. By and large, the 10th and 14th centuries are the climate zone of the Middle Ages. The 12th century was a cold time. At that time, due to the reduction in the size and production of grains, the base society experienced chronic hunger and social turmoil. Starting from natural disasters and leading to disasters(civil unrest), a new unrecognized right was born, completely different from the existing political order. The birth of the right to recognize disasters and disasters has developed in a similar process for both China and Japan. It was in Gyeongju that was hit by the tsunami relatively early and recovery was slow. The central government could not maintain its position of admiration, and it excluded it early from the Multiple capitals. The West Sea Province region was plagued by yellow worms and drought. The troubles of the Leejagyeom and Miaocheng originated from disasters in the West Sea region. The central government proposes various remedies for the base people. Ice charcoal was provided to the bureaucracy. In response to the heat wave, patronage and ponds were also created for the recreation of the fishermen. Forests are a source of seasonal charcoal and habitat for animals and plants. Due to the development of forests, animal habitats that used to coexist with humans have decreased. Deprived of their homes, the beast attacked humans. In response to the abnormal climate, the king had a self reflective attitude. Experiencing the low climate environment, the king took the attitude of moving from city to city. In the early days of the country, there were many trips to the Seogyeong. As it was a normal warm season, the northern part of the country was independent of the climatic environment. In the 12th century, the choice of the method, time, and place of the Goryeo king's journey was also based on climatic variables such as cold and cold in the Middle 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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