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토유물로 본 전남지역 마한제국의 사회 성격 -5~6세기 토기를 중심으로-
A Study on the Character of Mahan Society in the Jeonnam Region through the Excavated Artifacts - With a focus on the earthenware from the 5th and 6th centur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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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전남지역, 특히 영산강유역권의 5~6세기대 토기 양상을 중심으로 사회 성격에 대해 살펴보았다. 먼저 영산강유역권의 토기를 기종별로 정리한 후 그 특징을 독자성, 외래성, 내부적 지역 차이, 단계적 발전과 확산의 양상으로 나누어 검토해보았다. 영산강유역권의 토기는 백제 토기와 비교할 때 개배, 고배, 유공광구소호, 분주토기 등 토기 기종과 형식면에서 독자성, 외래성이 강하지만, 이와 함께 백제 토기가 점진적으로 유입되는 양상도 함께 나타난다. 그리고 일정 지역을 중심으로 토기의 기종이나 형식에서 통일성이 보이지만 내부적인 지역 차이가 상대적으로 약하고 그 범위도 뚜렷하지 못한 편이다. 또한 영산강유역권 각 지역에서 토기의 단계적 변화나 통일성이 약한 편이고, 토기의 확산도 그다지 활발하지 않다. 오히려 이 지역 토기에서의 통일성과 정연성, 내부나 외부로의 확산이 두드러지는 것은 6세기를 전후하여 백제식 토기가 본격화되면서 부터이다. 이러한 토기 양상으로 보아 당시 영산강유역권은 사회의 통합 정도가 그다지 강하지 못하고 여러 지역세력들이 짧은 시간동안 병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판단된다.
Abstract
This study presents an investigation into the character of Mahan society with a focus on the earthenware patterns around the Jeonnam region, especially the valley of the Yeongsan River, in the 5th and 6th century. Compared with the Baekje earthenware, the earthenware of the valley of the Yeongsan River in the 5th and 6th century had strong independence features and foreign traits and also showed the gradual introduction of Baekje earthenware. There was unity in the kinds and forms of earthenware around certain areas, but the local differences were relatively weak internally and had no clear scope. In addition, the stepwise changes and unity of earthenware tended to be weak in each area with no active spread of earthenware. It was after the full-blown introduction and development of the Baekje earthenware style around the 6th century that the unity, typicality and spread of the local earthenware became prominent. Those findings suggest that the social union was not much strong in the valley of the Yeongsan River those days with the coexistence of several local forces during a short period of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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