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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마한 병합과 충주지역 진출 시기

The Period of Baekje’s Annexation of Mahan and Advance into Chungju A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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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는 마한 소국 중 하나로 시작했지만 마한 세력이 점차 약해지자 마한의 국읍을 병합하고 지속적으로 남쪽으로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백제의 마한 병합 시기는 고이왕 13년(246) 기리영 전투 이후인 3세기 중후반으로 추정된다. 고이왕 25년(258) 이후 말갈의 공납과 좌평제와 관등제 확립 등은 마한 병합 이후의 변화상으로 볼 수 있다. 백제는 비류왕대 이후인 4세기 전반부터 본격적으로 충주지역에 진출하였다. 책계왕과 분서왕대에 악화되었던 북방 정세가 개선되고 고구려와 국경을 마주하게 되면서 남쪽으로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그 과정에서 풍부한 철산지와 한강수로가 있는 충주지역으로 진출하였다. 백제의 낭자곡성은 신라 진흥왕이 순수한 낭성과 동일한 지명으로 충주로 비정된다. 구체적으로는 신라 낭성이자 우륵이 가야금을 연주한 河臨宮으로 비정되는 탄금대에 축성된 4세기대 백제 토성인 탄금대토성일 가능성이 높다. 백제는 충주지역의 기존 마한 세력을 정복하고 칠금동 제철유적을 확보하여 본격적으로 철을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금릉동 유적 등 마한계 유적은 대부분 4세기 전반을 하한으로 사라지며, 4세기 중반 이후에는 탄금대토성 등 백제가 직접 조영한 유적들이 등장한다.

Abstract

Baekje started out as one of the Mahan small states, but gradually expanded its power. As Mahan power gradually weakened, Baekje annexed Mahan by surprise attack. The period of Baekje's annexation of Mahan is estimated to be from 246, when the Battle of Giriyoung took place, to 258, when Malgal was incorporated into the tributary system. The period of Baekje’s entry into the Chungju region is estimated to be in the first half of the 4th century, when King Biryu ascended to the throne after the deaths of King Chaekgye and King Bunseo, who were at war with the northern powers, and relations with the northern powers improved. In the process, Baekje advanced to Nangjagokseong, which is considered to be the Chungju region. Nangjagokseong is also related to Shilla Nangseong and can be seen as Tangeumdaetoseong earthen fortress, a Baekje fortress built in the 4th century. Baekje, which initially operated around the Tangeumdaetoseong earthen fortress and the Chilgeum-dong steel mill ruins in the early days of its advance into the Chungju region, gradually expanded its center to the area of Tappyeong-ri and Jangmisanseong Mountain Fortress, located on a large plain, as the size of the steel manufacturing complex expanded. Baekje occupied the Chungju area from the first half of the 4th century, and by the mid-to-late 4th century, it had achieved complete territorialization and managed the entire Han River basin from the Chungju area to the capital Hans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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