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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국가의 주동력, ‘청년’과 ‘소년’의 거리 - 최남선의 『소년』지를 중심으로 -

Main Power of the Nation-State, the Distance between 'the Youth(靑年)' and 'Boys(少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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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초록

‘소년’과 ‘청년’ 개념에 대한 축적된 연구에도 불구하고, 1900년대 말의 ‘소년’은 흔히 ‘청년’에서 미분화된 개념으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에 발간된 잡지 『소년』을 전후한 최남선의 글쓰기는 ‘소년’과 ‘청년’ 개념이 현실과 교섭하며 의식적으로 선택, 배제되는 양상을 뚜렷이 보여준다. 2차 유학 시절 ‘국민국가의 주동력’으로 ‘청년’을 호명했던 최남선은 실천의 급박성과 학생 신분의 제약 사이의 간극을 헌신의 강조나 선동적 구호 등으로 메우고 있다. 그러나 ‘모의국회사건’을 계기로 유학생 청년담론의 한계를 절감한 최남선은 학생 신분을 박차고 나와 출판운동이라는 직접적 실천에 뛰어드는 한편, 『소년』지의 대상으로 ‘소년’이라는 새로운 주체를 호명한다. 이렇게 하여 탄생한 『소년』의 ‘신대한소년’은 한편으로 양계초의 ‘소년중국’론과 같은 국가 혁신의 이미지를 표상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소년원』 등 일본 소년잡지의 영향을 받아 ‘소년’을 보통학교 학생 정도의 저연령층으로 특화한다. 완전히 비정치적인 주체로 호출되었던 제국의 소년과는 달리, 조선의 소년은 여전히 ‘신대한국민’이라는 정치적 임무를 부여받았지만, 소년의 실천은 미래로 유예됨으로써 유학생 청년담론과 뚜렷이 구별되는 낙관성을 띠게 된다. 그러나 식민지로의 전락을 앞둔 조선의 상황에서 ‘소년’에게 주어진 유예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안창호와의 만남을 통해 『소년』지가 <청년학우회>의 준기관지화되면서, ‘소년’은 애초의 의도와는 달리 어린 연령층을 넘어 진취성, 근로역작 등으로 가치화되고, ‘청년’과 혼용되다가 결국 ‘청년’에 자리를 내주게 된다. ‘청년’이 이처럼 실천의 주체로 재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유학생 시절 ‘분기하라 청년’같은 추상적 구호를 넘어선 실천의 방침, 즉 청년학우회의 준비=실천의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Abstract

『The Youth』 published by Choi Namsun apparently shows the difference between '少年‘ and '靑年.’ During the period of study in Japan, Choi interpellated '靑年‘ as the main power of the nation-state and bridged the gap between the urgency of practice and the constrained condition of the students with the emphasis on the self-sacrifice or seditious slogans. However, conflicting the blind alley of 'the event of mock congress', Choi painfully felt the limit of '靑年’ discours and quit the study in Japan and published 『The Youth』, the first modern journal of Korea. ‘少年’ of 『The Youth』 represented the image of innovated modern nation-state by Yang Gyecho while specialized ad the group below the age 15 influenced from the Japanese journals for the youth. ‘少年’ of the colonial Chosun, unlike the imperial Japanese Youth, the genuinely non-political subject, was still interpellated as the political subject "New Deahan People" but their political practice was postponed intl the future. With the encounter with An Chang ho, Choi re-called '靑年‘ as the subject of the 'practice=preparation'.

참고문헌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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