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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근대 극장의 식민성과 정치성

Coloniality and Politics of Modern Theatre in East 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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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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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극장이 근대적 제도로서 성립한 시기의 식민지조선과 중국의 사례를 비교 검토함으로써 동아시아 극장의 식민성이 어떻게 구성되어갔는지 해명하고자 하였다. 이 식민성은 필연적으로 제국주의와의 관계적 구조에서 생성된 것이지만, 동시에 극장 안/밖에 걸쳐 작동되었던 정치들을 매개로 하여 형성되어간 역사적 퇴적물이라 할 수 있다. 이는 한편으로는 제국주의의 이해관계에 따른 전략적 선택에 따라, 다른 한편으로는 동아시아 내부로부터 발원하는 또 다른 독립변수에 따라 지역적 차이를 생산해낸 것으로 보인다. 미디어 지배권의 경우 기본적으로 그 차이는 현저했지만, 양국을 근사(近似)하게 만든 것은 바로 지정학적 위치 때문이었다. 한반도에서 만주를 거쳐 중국 대륙 전체를 점령하고자 했던 일본의 제국주의적 기획은, 비록 지배정도가 다르고 토대 또한 달라도 식민지조선과 중국에 있어서, 필연적으로 일본제국에 대한 저항감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었던 관계적 구조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3․1운동과 5․4운동 그리고 그 문화적 반향이 그 단적인 예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획시기적인 계기는 극장문화와는 행복한 조우를 하지 못했는데, 이 시대의 극장이란 제국주의와 시장주의의 결합으로 탄생된 것이기 때문이다. 대신 극장 안을 채운 것은 할리우드영화를 주류로 하는 외화 혹은 통속적인 문법의 흥행물이었다. 외화 소비의 특이성은 극장이 종족공간이 될 수밖에 없었던 식민지조선에서는 현저했지만, 자국의 문화물 제작과 소비가 활발했고 자국의 전통과 자본이 중요한 변수였던 중국에서는 그 정치적 함의가 낮은 편이었다. 이러한 차이는 동아시아 극장에서 문제적인 현상이 통속성임을 말해준다. 이 현상은 분명 제국주의 문화제도에 의해 강제된 결과였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자면 제국주의와 시장주의에서 연원하는 압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로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멜로드라마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동아시아 극장이 자산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던, 혹은 극장의 흥행물이 필경 도달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인식론적 구조가 내보인 집단적 감성의 산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장 안/밖은 제국주의와의 관계적 구조를 선/악의 구조로 인식하는 멜로드라마적 인식론을 공유하고 있었으며, 이 사정은 동아시아에서 내셔널리즘이 강화되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Abstract

This study aimed to clarify the coloniality construction process in East Asian theatres by comparing examples of colony Chosun and China at the period when the theatre was established as a modern institution. The coloniality was inevitably produced from the relative structure between theatres and nationalism. At the same time, however, it can be seen as a historical sediment formed by the politics operated inside and outside of the theatres. It seemed that the coloniality created regional differences following strategic choices resulted from imperialistic interest on one hand, and an independent variable manifested ab intra East Asia on the other hand. For example, in case of media control power, basically the power itself has a variable spectrum. What made two countries looked similar was actually their geopolitical locations. Japan’s imperialistic project to occupy the whole Chinese continent including Korean peninsula and Manchuria must have evoked resistance among colony Chosun and China even though the degree of control and foundation of two countries were different from each other. March first independence movement, May fourth movement, and its cultural sensation is the clear example of that. Nonetheless, that ground breaking opportunity was not able to find the interface with theatre culture because the theatres at that time were the combination of imperialism and marketism. Instead, foreign, mainly Hollywood, films and commercial movies with common grammar occupied theatres. The foreign film consumption was a peculiar phenomenon in colony Chosun where theatres inevitably became the space for the same race. However, unlike Chosun, theatres contained less political undertone in China where cultural production and consumption was active, and local tradition and capital were the important variables for that. This difference between two countries tells us that the problematic phenomena East Asian theatres converged to the matter of commonness. This phenomena was the result of imperialistic cultural institution, but at the same time, it was the defense mechanism to protect themselves from the imperialism and marketism. Especially melodrama required more attention since it was the result of the collective sensibility which epistemological structure revealed. East Asian theatres at that time nothing to do but owned their own asset – collective sensibility which was also a prerequisite of popular films/shows. Nevertheless, the inside and outside of theatres shared melodramatic epistemology that saw the relational structure between the theatre and imperialism as good and evil. Overall, this circumstances reinforced nationalism in East Asia in some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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