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조선의 문화사업, 극장업
The Theatre: A Cultural Enterprise in Colo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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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식민지 시기 조선의 주요한 문화사업 중 하나인 극장업은 경제와 정치라는 두 가지의 주요한 계기를 가지고 있었다. 경제적인 사업으로서 극장업은 이윤획득을 목표로 하는 자본주의적 행위로 이루어졌으며, 그 행위들의 총합으로서 ‘극장산업’을 형성했다. 주목해야 할 것은 극장업의 경제적 차원에 있어서 ‘조선’이라는 기표는 ‘셀링포인트’로서의 의미를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또한 극장업 내에서 조선인들은 일본인들 아래에서 긴밀한 동업자적 유대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는 이전의 조선인 극장업자에게 부여된 과도한 민족정치적 의미가 재평가되어야 함을 뜻한다. 그러나 식민지 조선의 극장업에 있어서 정치적 계기 또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단, 이는 널리 알려진 조선인 극장업자들이 활약했던 경성에서가 아니라, 지역의 중소 도시들에서 두드러진 특성이었다. 극장을 짓고 운영하는 것은 유지들이 지역민의 인망을 얻기 위한 주요한 수단이었으며, 무엇보다도 극장 자체가 지역의 여론이 형성되는 정치적 공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역시 ‘조선’은 온전한 민족정치적 의미를 부여받지는 못했다. 그것은 식민권력이 제공하는 정치적 틀 속에서만 가능한 것이었으며, 제국 내 지역으로서의 ‘조선’이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식민지 시기 조선에 있어서 극장업은 경제와정치를 중요한 계기로 가지는 문화사업이었다. 그리고 ‘식민성’은 그 두 계기를 관통하고 있었다.
Abstract
The theater business, one of the most important cultural enterprise had two major moments: economy and politics. As a economic enterprise, it was composed of the capitalist works that is aimed to gain profits and the total sum of the workings composed theater industry. At the same time, its political meaning was still important, especially in the provinces. To the regional men of power, the building and managing a theater was a very effective method to get a reputation and theater itself was a political space in the regional society. Such economy and politics of the theater enterprise was penetrated by the colonial. Because the Korean theater businessman was subject to Japanese and to the Korean politician, the 'Korea' didn't has a meaning of a nation but just a meaning of region in Japan Emp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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