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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도의 학문과 사상적 특징

The Characteristic of Yun Seon-do’s Study and Thou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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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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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대표적인 호남사림이었던 윤선도는 이 시기 문학가로서 또한 정치가와 사상가로서 굵직한 발자취를 남겼던 인물이다. 그러나 문학가로서의 그의 모습은 그 동안 많은 조명을 받아왔으나 정치가와 사상가로서의 그의 모습은 별로 주목받지 못하였다. 이 글은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 위에서 윤선도의 학문과 사상을 살펴보려는 것이다. 즉 비판적 지식인으로서의 삶의 배경이 되었던 그의 학문과 사상적 특징을 실천 중시의 학문, 得人論, 安民論, 실용성과 박학성 등으로 나누어 살펴본 뒤 이를 바탕으로 한국유학사상사와 호남유학사상사에서의 그의 위치를 자리매김 해보고자 한다. 윤선도는 『소학』을 매우 중시하였으며 자손들에게도 일생동안 『소학』을 실천할 것을 당부하였다. 또한 『대학』의 格物物格說은 物理와 나를 구분하지 않고 사물과 인간의 상호적인 과정, 즉 物我一體의 과정으로 보아 실천성을 강조하였다. 아울러 내적 수양의 기준으로서의 敬과 외적 행위의 기준으로서의 義를 중시한 데 이어 禮까지 강조하였다. 득인론은 윤선도의 사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에게 있어 득인론은 민생과 국방, 향촌 등 국가의 모든 분야의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 방책이기도 하였다. 윤선도는 하늘의 뜻을 돌릴 방도는 오직 민생의 안정, 즉 안민에 있고 민생을 안정시킬 방도는 오직 인재를 얻는 것, 즉 득인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그는 당시 조정에서 적임자를 얻지 못하는 이유로 붕당의 폐해를 들며 破朋黨論을 주장하였다. 윤선도의 안민론은 철저한 爲民의식 속에서 나왔으며 그의 위민의식은 災異論에 의해 뒷받침되었다. 그는 효종의 군사력 강화정책에 반대하고 양전과 호패법에 대해서도 강하게 반대하였다. 반면 대동법에 대해서는 均賦의 관점에서 찬성하였다. 따라서 그의 사회경제정책론은 산림적 안민론과 관료적 안민론의 중간에 위치한다고 볼 수 있다. 윤선도의 학문․사상의 또 다른 특징은 실용성과 박학성이다. 그는 성리학뿐만 아니라 문학․예학․의학․풍수지리․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 조예가 깊었다. 그리고 이러한 박학적․실용적 특징은 가학으로 전해져 윤두서와 정약용에게서 활짝 꽃을 피웠다. 전체적으로 윤두서의 학문과 사상은 내용적으로 정개청과 이황, 즉 북인(근기남인)과 영남남인의 중간적인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학계에서 윤선도는 남인 또는 북인계 남인 범주 안에서 다루어왔다. 그러나 이는 문제가 없지 않다. 따라서 17세기 이후의 남인을 근기남인과 영남남인, 호남남인 이렇게 셋으로 범주화시켜 살펴보는 것이 역사적 현실에 더 가깝게 다가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렇게 했을 때 윤선도는 조선 전체 역사에서 보면 기묘사림의 도학 → 서경덕학파 → 북인의 학문 → 북인계 남인(호남남인)의 학문 → 근기남인실학(호남실학)으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호남남인을 대표하는 인물이었으며, 호남의 역사에서 보면 이전에 최부계열 → 서경덕계열 → 정개청계열로 이어지는 흐름과 문학에서의 古文復興運動의 흐름을 일단락 짓고, 이어서 18세기 이후 ‘호남실학’의 문을 본격적으로 열기 시작한 인물 가운데 한 명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그의 학문․사상적 위상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Abstract

Yun Seon-do who was typical Honam sarim left his mark as a writer, politician and scholar in the 17th century. He have not gotten the attention as a politician and thinker but as a writer until now. This article looks into Yun Seon-do’s study and thoughts, that is to say a study of emphasizing practice, a theory of appointing talented person and easing people’s life, practicality and erudition. So with these I establish him in Korean and Honam history of Neo-Confucianism. Yun Seon-do put stress on 『Sohak(小學)』very much and asked his offspring to practice this book in their life. He also put emphasis on 『Daehak(大學)』. Furthermore he emphasized respect(敬) as a standard of internal cultivation, righteousness(義) as a standard of external cultivation and ritual(禮). A theory of appointing talented person was the core of Yun Seon-do’s thoughts. this was the fundamental way to resolve the problems of all these areas such as people’s livelihood, national defense and rural community. He asserted that the way to remit heaven’s anger was only in a stabilization of people’s livelihood and the way to stabilize people’s livelihood was only in a appointment of talented person. He also maintained to dissolve factions because the reason not to earn a well-qualified person was faction. Yun Seon-do’s opinion about a stabilization of people’s livelihood was thoroughly originated from the consciousness for the people. And his consciousness for the people was supported by the theory of natural disaster(災異論). He opposed King Hyojong’s policy of building up the military power, Yangjeon(量田) and Hopaebeop(號牌法) strongly, while he agreed with Daedongbeop(大同法) from equal taxing point of view. Another characteristic of Yun Seon-do’s study and thoughts was practicality and erudition. He was well versed in not only Neo-Confucianism but also a literature, a ritual thoughts, a medicine, Feng Shui theory and a music manifoldly. Such characteristic was succeed to his descendants and was in full bloom in case of Yun Doo-seo and Jeong Yak-yong. Generally Yun Seon-do’s study and thoughts lied halfway between Jeong Gae-cheong and Yi Hwang, in other words between Bukin(Geungi namin) and Youngnam namin. So it is reasonable that we look into Namin with deviding as Geungi namin, Youngnam namin and Honam namin. If so, Yun Seon-do was typical Honam namin in the academic stream continuing Dohak(道學) of Kimyo sarim → a school of Seo Gyeong-deok → a study of Bukin → a study of Bukingye Namin(Honam namin) → Geungi namin silhak(Honam silhak) in the history of Joseon. He was also one of scholars to open the gate of Honam silhak. in the academic stream of Choi Boo group → Seo Gyeong-deok group → Jeong Gae-cheong group in the history of Honam. There is his academic status 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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