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진도독부의 대왜정책 검토
An examination on the Japan Policy of the Ungjin Dodok-b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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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당은 백제고토에 웅진도독부를 설치하였다. 웅진도독부는 664년에 고구려정벌을 위한 후방기지의 안정화 및 666년에 열리는 태산봉선에 왜국 참가를 목적으로 하여 왜국에 사신을 파견하였다. 협상의 결과 웅진도독부(당)는 왜국의 요청대로 당 천자의 이름으로 665년에 사신단을 파견하였고, 왜국은 당의 요구였던 666년의 봉선의례에 참가하였다. 한편 668년 이후의 대왜관계는 웅진도독부 소속 백제계 관료들이 주도하였다. 이들은 후 신라와 당이 전쟁으로 치닫게 되면서 웅진도독부 내에 당 세력의 공백이 생기자, 자신들의 정체성이 ‘백제’에 있음을 내세우며 왜국과의 군사외교를 재개하였다. 이들은 왜국에 군사지원을 요청으로써 신라로부터 벗어나려는 백제계 관료 나름의 ‘貳心’을 드러내는 계기로 삼았던 것이다. 그러나 왜국이 한반도 전황 개입불가 선언을 함으로써 결국 웅진도독부 소속 백제계 관료들의 대왜외교는 실패하고 말았다.
Abstract
After Baekje was overthrown, Tang established Ungjin Dodok-bu at the native land of Baekje. Ungjin Dodok-bu tried to stabilize the native land of Baekje through the postwar restoration of Baekje in order to conquer Goguryeo. At the same time, Ungjin Dodok-bu also tried to improve relationship with Japan by inducing attendance Taishan Bongseon Ritual in 666. In 664, Jinjang sent both Tang’s own official Gwak Mujon and Officials of Baekje decent to Japan. In 665, as a result, Tang sent representatives as requested and Japan attended Bongseon Ritual in 666 in return. Since 668, however, the foreign policy with Japan had been continued by Baekje official decent. The officials of Baekje decent focused on the recovering military relationship with Japan as people of Baekje. But, unfortunately, their foreign policy with Japan came to end in failure since Japan announced the impossibility to involve any war in Korean peninsu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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