熊津都督府의 對倭교섭과 沙(宅)氏
The Sataek Clan and Diplomatic Missions betweenthe Ungjin Dodokbu and Yamato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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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글은 660년 당으로 압송되었던 沙宅孫登이 671년 送使로 왜에 파견된 사건의 배경을 살피고 있다. 664년 이후 당의 대왜교섭 기록을 살펴보면 모두 熊津都督府를 매개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확인된다. 이는 劉仁願이 668년 姚州에 유배되기 전까지 웅진도독부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고 웅진도독부의 운영이 유인원 휘하의 당인 郭務悰을 비롯하여 친당 성향의 백제계 관인들에 의해서 이루어졌기에 가능했다. 웅진도독부는 이전 백제와 왜 사이의 친연관계를 활용하기 위해 사절을 당인+백제인으로 구성하였고, 이에 664년 당인 곽무종이 백제인 禰軍과 함께 왜로 향했으나, 당의 공식 사절이 아니라는 이유로 入京하지 못하고 筑紫에 머무르다 돌아왔다. 이에 665년에는 당에서 공식적으로 劉德高를 파견하였는데, 그는 곽무종, 예군과 함께 왜에 도착하였다. 이는 곧 유덕고가 웅진도독부를 경유하여 왜로 향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668년 고구려의 멸망으로 웅진도독부와 신라 사이의 관계가 미묘해지기 시작한 상황에서 670년 예군이 신라에 억류되었다. 660년 당으로 끌려갔던 사택손등이 671년 예군을 대체하여 대왜교섭의 담당자로 발탁된 배경에는 近江朝廷의 권력 중추에 가까이 있던 沙宅紹明이 있었다. 中臣鎌足, 大友皇子의 측근이었던 사택소명의 존재는 665년 파견되었던 유덕고와 곽무종을 통해 당과 웅진도독부에 알려졌을 것이다. 또 671년 정월 왜에 파견되었던 李守眞을 통해서 왜에서 사택소명을 비롯한 백제 유민들이 중용되고 있는 상황이 웅진도독부에 전해졌을 가능성도 높다. 663년 백강과 주류성에서 패배하면서 포로가 되었던 왜인들을 왜에 송환하고 그 대가를 얻어내려 했던 당과 웅진도독부는 664년과 665년의 사절 파견을 통해 확보한 인적 네트워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大友皇子, 사택소명과 교분이 있던 곽무종과 함께 멸망 이전 백제에서 함께 활동했고, 또 같은 친족집단에 속해 있던 사택손등을 파견함으로써 협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를 기대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사택손등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알려진 자료만으로는 밝히기 어렵다. 다만 642년 백제에서 사신으로 온 砂宅智積을 대좌평이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沙(宅)氏의 정치적 위세는 이미 왜에 알려져 있었을 것이다. 여기에 사택소명과의 관계까지 고려한다면 사택손등이 사절로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이 높다.
Abstract
This study examines the background of Sataek Sondŭng (沙宅孫登)’s dispatch to Japan as an envoy in 671, following his earlier deportation to Tang in 660. Records after 664 indicate that Tang’s diplomacy with Yamato Japan was conducted through the Ungjin Dodokbu (熊津都督府), which was controlled by Liu Renyuan (劉仁願) and administered by Tang officials such as Guo Wucong (郭務悰), along with pro-Tang Baekje elites. In order to utilize the traditional Baekje–Yamato Japan ties, the Ungjin Dodokbu organized embassies composed of both Tang and Baekje representatives. However, the 664 mission led by Guo Wucong and the Baekje official Ye gun (禰軍) failed to gain official recognition in Yamato Japan, prompting Tang to send Liu Degao (劉德高) in 665, who reached Yamato Japan via the Ungjin Dudokbu with Guo Wucong and Ye gun. After the fall of Goguryeo in 668, relations between the Ungjin Dudokbu and Silla grew strained, and in 670 Ye gun was detained in Silla. Against this backdrop, Sataek Sondŭng emerged as Ye gun’s replacement, supported by the influence of his kinsman Sataek Somyŏng (沙宅紹明), who held a prominent position in the Ōmi court (近江朝廷) as a close associate of Nakatomi no Kamatari (中臣鎌足) and Prince Ōtomo (大友皇子). The Tang court and the Ungjin Dudokbu, aware of Sataek Somyŏng’s position, sought to capitalize on the existing network built through previous missions. By dispatching Sataek Sondŭng-who had earlier worked with Guo Wucong and belonged to the same kin group as Sataek Somyŏng-they aimed to secure favorable negotiations, particularly concerning the return of Yamato Japan captives taken in 663 at Baekgang (白江) and Juryuseong (周留城). Although the specific role played by Sataek Sondŭng remains unclear due to limited sources, records such as the 642 mission of Sataek Jijŏk (砂宅智積) suggest that the prestige of the Sataek clan was already known in Yamato Japan. Combined with his ties to Sataek Somyŏng, it is highly plausible that Sataek Sondŭng exercised considerable influence as envo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