唐 太宗·高宗代 한반도 정책과 百濟의 위상 -당 태종·고종본기를 중심으로-
A study on the Tang-dynasty's Policy on the Korean peninsula and status of Baekj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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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고에서는 백제와의 전쟁을 결정하고 결행하는 과정에서 백제에 대한 당의 입장과 동향을 알아보았다. 당의 입장을 파악하기 위하여 『삼국사기』나 중국 정사 동이전의 기사 보다는 『舊唐書』나 『新唐書』의 본기의 기록에 관심을 두었다. 당은 고구려와의 전쟁을 위해서는 장기간 정보를 수집하고 준비를 하였지만 백제에 대해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고종의 즉위 초에는 당의 국내정세가 좋지 않았다. 빈번한 재해와 모반사건 등은 고종이 대외문제에 주력할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였다. 국내의 문제가 어느 정도 안정되고 돌궐이나 서북변경의 문제 또한 진정된 이후에야 당은 한반도 문제에 주력하였다. 한반도 문제는 고구려, 백제, 신라를 제압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당의 ‘四方’ 중 동방정책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당의 동방진출에 가장 큰 걸림돌은 단연 고구려였다. 고종은 대신들을 불러 연회를 베풀며 ‘一戎大定樂’을 연주하게 하였다. ‘一戎大定樂’은 군대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위용을 과시하는 음악이었다. 고구려에 대한 정벌의 의지를 재삼 다짐하였던 것이다. 대 고구려전을 준비하는 중에 당이 선택한 동맹국이 신라였다. 신라의 협조를 얻어내기 위해서라도 신라의 요구를 수용하여 백제에 대한 선공이 필요한 입장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대 백제전에서 당은 백제의 항복을 받아 내는 것으로 전쟁을 마감하고 고구려로 진격하는 것이 목표가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당은 백제에게 항복을 받아낸 직후인 661년 서둘러 고구려 원정길에 나섰던 것이다. 그것은 당시 당의 전반적인 대외정책의 방향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투항한 국가에 대해서는 기미지배방식을 적용함으로써 당의 지배를 관철하는 것이 당의 대외정책이었다. 백제의 항복은 이미 그 조건을 충족시켰으므로 당이 더 이상 백제를 압박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백제에서의 부흥운동은 백제지역에 대한 기미지배조차 불가능한 상황을 만들었다. 신라 또한 백제의 부활을 원치 않았으므로 백제에 대한 전투가 재개되었던 것이다. 결국 당은 신라와의 전투에서 패배하여 백제에 남겨 두었던 기미지배 기구는 철폐하였고, 백제지역에 대한 기미지배는 포기하였다. 당의 기미정책은 기미주 사이의 세력균형을 인위적으로 조정하여 부족 간의 결합을 저지하는데 중점이 두어졌다는 점을 상기해 보면, 당이 백제지역과 고구려지역에서 기미지배에 실패했기 때문에 한반도에는 신라와 백제와 고구려의 통합국가가 건설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였다고도 볼 수 있다.
Abstract
When analyzing the relationship between Goguryeo, Silla, Tang, and Baekje, the records of the Samguksagi(三國史記) or the JiuTangshu(舊唐書). XinTangshu (新唐書) provides us with the most information. In this paper, I tried to understand the position and trend of the Tang Dynasty on the war with Baekje. Although we expected a lot of information on the issue, it was difficult to find meaningful information about Baekje. This is a very different case from Goguryeo. So, I thought about why there were so few records of Baekje. Although Baekje has collected long-term information and prepared for the war against Goguryeo, Baekje has never had such a situation. It was not because Baekje was easy to deal with, but because Baekje was at odds with Silla, and the Tang Dynasty was not planning a war because there were no special problems. There is no reason to support the Silla kingdom, as Baekje and Silla were countries that paid the same tribute. However, Baekje was in a bad relationship with Silla when the king was preparing to fight Goguryeo. Thus, the attack on Baekje was necessary for the Tang Dynasty to cooperate with Silla. In the war that began this way, the Tang Dynasty sought to end the war by accepting the surrender of Baekje. The foreign policy of the Tang Dynasty was focused on artificially adjusting the balance of power between the tribes, thus preventing unity among the tribes. It can be said that the Korean Peninsula provided conditions for the construction of a unified kingdom between Silla, Baekje and Goguryeo, as the kingdom failed to control its territory in Baekje and Goguryeo. If indirect control had been successfully maintained in Baekje, as the Tang Dynasty had intended, and if it had been done in Goguryeo, integration by Silla would have been impossible or even delayed. The revival movement of Baekje and Goguryeo people did not bring about the revival of Baekje and Goguryeo, but it is thought that it was the most important move that allowed the unification of the three kingdo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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