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후반~19세기 전반 연암그룹 지식인들의 天 인식
Yeonam Group’s Perception of Heaven during the Mid-Eighteenth and Early-Nineteenth Centuries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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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 글은 연암그룹의 天 인식을 통하여 그들의 中華․夷狄 논의의 중요한 전제였던 제3자로서의 天이 갖는 성격과 그들이 천주교, 불교 등에 대하여 제시한 온건한 대책의 배경을 살펴보고자 한다. 연암그룹은 邵雍(1011∼1077)의 氣數論的 天觀과 천주교의 人格天 인식이 갖는 선험성을 비판하였고, 자연천 인식을 주장하면서 사물의 실제적인 理를 탐구하고자 하였다. 이는 개방적인 학문태도로 나타났으며, 이러한 맥락에서 그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神異한 현상도 일방적으로 무시하지 않았다. 여기에서 成大中(1732~1809)의 因果報應論이 나올 수 있었다. 인과보응론은 자연천과 인격천 인식의 중간지점을 보여주었다. 연암그룹의 중화․이적론과 천주교, 불교 등에 대한 온건한 대응론은 이러한 天 인식을 통하여 가능하였다.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investigate ideological background of the moderate heretical counter-measure proposed to the Catholicism and Buddhism as well as actual nature of Heaven as an objective third party which had been crucial prerequisite of equalizing Chinese and barbarian by exploring Yeonam Group’s perception of Heaven. Park, Ji-won criticized the apriority appeared in Shao Yong’s perception of the Fateful Heaven and Catholicism’s perception of the Supreme Heaven. As a successor to Yulgok school, Yeonam Group insisted on the perception of Natural Heaven, criticizing Chu-xi, Shao Yong, and Catholicism’s perception of Heaven based upon apriority, and exploring actual principle (li, 理) to each and every thing in a concrete way. That happened to appear as a type of open academic attitude that didn’t confirm nature of things in advance. Accordingly, they admitted what they thought was mysterious beyond their understanding, rather than disregarded it one-sidedly. That’s how Seong Dae-jung’s theory about Heaven’s reward and nemesis came into existence. According to Seong Dae-jung’s theory, Heaven’s reward and nemesis is mysterious and miraculous enough to give an image that Heaven itself took on a humane figure. That’s the way that Yeonam Group’s argument of equality of Chinese and barbarian and its moderate response to the Catholicism, the Buddhism, and the Taoism came into being in this cont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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