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상으로서의 정몽주 글씨
Jeong, Mong-joo’s Calligraphy as a Represen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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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정몽주의 친필 편지가 여러 차례 모사되고 번각되었다는 것을 남아 있는 복본들이 말해주고 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복본들은 읽기 위하여 제작된 것이 아니라 기념물로 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몽주의 글씨를 기념물로 가장 먼저 제작한 사람은 尹斗壽였다. 그는 모각한 정몽주의 글씨를 때때로 보며 그의 충성을 생각하고 공경했다. 정몽주의 글씨가 윤두수에게는 충신의 표상이 되었던 것이다. 정몽주는 사림에 의하여 東方理學之祖로서 추앙되었다. 그러다가 分黨된 후 남인에 의하여 東方理學之祖로서 전유되고 추앙되었다. 權相一은 영남의 대표적인 서원 道南書院에 정몽주의 글씨를 번각하여 모셨다. 그에게 정몽주의 글씨는 東方理學之祖로서의 표상이었다.
Abstract
Jeong, Mong-joo(鄭夢周)’s two handwritten letters were copied several times. Taking a closer look shows that those copies were made not for reading but as a monument. It was Yoon, Doo-soo(尹斗壽) who made the copy of Jeong, Mong-joo’s two letters as a monument first. Every time he look at them, he recalled Jeong, Mong-joo’s loyalty to the country. So to speak, to him Jeong’s calligraphy was a representation of loyalty. From 15th century, Jeong, Mong-joo was revered as the father of East Country(Korea) Neo-Confucianism(東方理學之祖). Then in 17th century after the split of political party, Nam-in(南人) party monopolized and revered Jeong, Mong-joo. Gwon, Sang-il(權相一), one of Nam-in party scholar reprinted and enshrined Jeong, Mong-joo’s calligraphy at Do-nam Seowon(道南書院). To Gwon, Sang-il, Jeong, Mong-joo was a representation of the father of East Country Neo-Confucianism.
참고문헌 (12)
- 鄭夢周, "圃隱集", 성균관대 존경각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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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權相一, "淸臺先生文集", ~
- 權相一, "淸臺日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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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대학교 박물관, "先賢筆蹟集" (1983), 동아대출판부
- 김영두, "조선 전기 도통론의 전개와 문묘종사", 박사, 한국사, pp.20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