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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 성균관 중영과 정몽주의 이학(理學) 정신의 계승

Neo-Confucianism of the spirit of science and engineering of Sungkyunkwan Jungyoung and Jeong Mong-ju in late Gory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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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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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공민왕의 성균관 중영의 목적과 여기에 교관으로 참여한 정몽주의 사상적 기반과 그의 이학(理學) 정신이 고려말과 조선시대 후학들에게 어떻게 계승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 것이다. 정몽주는 3년 시묘로 부자간의 도리를 실천했고, 문생으로서 좌주에 대한 의리도 저버리지 않았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좌주와 문생 간의 의리를 지킨 것이다. 또한 절의로 순국을 마다하지 않으므로써 군신간의 도리를 실행했다. 달리 말하면 부자유친(父子有親)과 군신유의(君臣有義)로 대표되는 오륜의 도리를 참으로 알았고 나아가 이를 실천하였다. 즉,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의 정신을 발현한 것이다. 이러한 정몽주의 학문과 사상, 그리고 그의 경세론에 영향을 받은 문인(門人)들은 성균관의 강학 교육이나, 사적인 사제관계로 정몽주세력에 참여한 사람들이 그들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정몽주는 이러한 생애와 학문은 여말 신흥사대부의 존숭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조선 사림파의 유종(儒宗)으로 추앙되었기 때문에 유학을 통치 이념으로 삼은 조선왕조는 이념의 표상이 될 인물이 필요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지지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도 정몽주에 대한 추숭 사업을 끊임없이 진행하였다. 1401년(태종 원) 영의정에 추증하고 문충(文忠)이라는 시호를 내려서 완전히 복권시킨 것이나, 1517년(중종 12) 포은을 문묘(文廟)에 종사(從祀)한 것이나, 초기의 『포은집』 간행에 국가가 적극 앞장선 것 또한 모두 이러한 데에 기인한 것이다. 또 한편 조선의 사림파도 도통(道統)의 연원을 정몽주에 둠으로써 그들대로 『포은집』 간행 등 현창 사업을 적극적으로 벌여 왔다.

Abstract

This article aims to examine the purpose of King Gongmin's Sungkyunkwan training, the ideological foundation of Jeong Mong-ju, who participated as an instructor, and how his Neo-Confucian spirit was inherited by later scholars in the late Goryeo and Joseon Dynasties. Jeong Mong-ju raised Neo-Confucianism inside, and fulfilled his duty and social responsibilities toward his parents outside. Jeong Mong-ju practiced the duty between the father and the son with a three-year grave, and as a literary student, he did not betray his loyalty to Jwaju. He was not afraid of death and kept the loyalty between the governor and the student. In addition, he did not hesitate to die as a martyr, so he carried out the duty of military officials. In other words, he really knew the principles of the five-year-old, represented by Father and son are related(父子有親) and A monarch and his subjects are righteous(君臣義有), and further practiced them. In other words, it expresses the spirit of the whole of one's father and one's teacher's king(君師父一體). It is presumed that the writers influenced by Jeong Mong-ju's scholarship, ideology, and his theory of economics were those who participated in the Jeong Mong-ju forces due to the lecture education of Sungkyunkwan or private teacher relations. Jeong Mong-ju not only respected these lives and studies by the end of the Yeo Sang-sa Daebu, but also revered as King Yujong of the Joseon Sarim faction, so the Joseon Dynasty, which used Confucianism as its ruling ideology, not only needed a person to be a symbol of ideology, but also carried out harvesting projects for Jeong Mong-ju to draw their support. It is also due to this that the government took the lead in the publication of Poeunjip in the early period of Poeunjip in 1517year and completely reinstated the name of Munchung, as well as the the enshrinement of scholars in Munmyo (Confucius's shrine)(文廟從祀) in the early publication of Poeunjip was also attributed to this. In addition, the Sarim faction of Joseon has also actively carried out hyunchang projects, including the publication of Poeunjip, by placing the origin of the genealogy of Neo-Confucianism(道統) in Jeong Mong-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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