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의 戶口運營論 ― 『목민심서』를 중심으로
On Management of Household and Population by Dasan Jeong Yakyong― How it is described in Mongminsims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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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조선왕조는 일체의 호구누락을 허용하지 않는 ‘핵법’을 戶政의 원칙이자 법제로 공표하였다. 하지만 현실의 호구운영은 대강의 총액을 자체적으로 조사하는 ‘관법’의 방식이었다. 관법의 호구파악방식은 이서배들의 농간이나 촌락간 호총의 불균, 각종 토색 등 많은 문제를 낳고 있었다. 정약용은 현실의 관법을 인정한 위에 수령의 권능이 허용하는 한에서 호구운영에 대한 구체적이고도 효율적인 개선책을 강구하는데 집중했다. 우선 호적개수의 행정절차를 재정비하고 가좌책을 현실가호를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핵법적 장부로 자리매김하였다. 立戶는 가좌책의 家戶를 大家・中家・小家 등으로 구분하여 해당군현에 배정된 호총에 대응하여 적절한 비례식을 적용, 充數하도록 하였다. 이는 당시 호남지역에서 관행하던 방식이었다. 핵법적 원칙에 의해 자연호에 가깝게 파악한 가좌의 총수를 통해 立戶의 근거를 최대한 넓힌 후 지역에 부과된 호총에 대응하는 방식은 보다 유연하고 공정한 호구운영을 기하기 위한 유력한 대안이었다. 아울러 수령은 상사와의 협의를 통해 호총이 과중한 부담이 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나서야했다. 여기에는 호적개수에 들어가는 공식 항목 이외에 일체의 추가징수를 금하고 호적의 정보변개를 차단하는 등 갖가지 조치가 수반되었다. 이서들에게는 이들이 가진 지역사회에 대한 영향력과 실무과정의 노고를 일정하게 인정해주는 등 세심한 배려를 잊지 않았다. 다만, 이러한 방안의 실제 적용과 그 효용의 지속성에 대해 정약용은 회의적인 입장을 떨치지 못했는데 이는 일개 수령의 권한으로 호구운영이 가진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에 현실의 벽은 지나치게 높음을 자인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정약용의 호구운영론은 핵법의 이상을 염두에 두고 관법의 현실을 인정한 위에 현실의 제도와 관행을 적절히 손질하여 수용한, 철저한 순속적 입장에서 제기된 것이었다.
Abstract
Haekbeop(total registration), which does not allow any omission of population in the register, was legislated as the principle of population policy by Chŏson dynasty. However, Gwanbeop(partial registration), a method of autonomous investigating with the approximate sum of population, was utilized in practice. Population measurement of Gwanbeop style resulted in various problems such as manipulation of functionaries, imbalance of Hochong(sum of household), and varieties of extortions. Jeong Yakyong focused on specific and efficient improvement in the management of population register as far as the authority of the magistrate would be allowed while admitting Gwanbeop in the real world. First, he rearranged the administrative procedure of revising population register, and approved Gajwachaek as the ledger of Haekbeop style where actual households were inspected. In the process of Ip-ho(registering households), each Gaho(a household) was categorized as Dae-ga(large household), Jung-ga(medium household), So-ga(small household), etc., and was designed to be added to the number in proportion according to Hochong allocated to each Counties and Prefectures. This was the method which had been adopted in Honam region at the time. The method, in which under the principle of Haekbeop the total number would be registered close to the actual number of households, was a reliable alternative for the flexible and fair management of population register to correspond Hochong allocated the region. Moreover, the magistrate was required to actively consult with his superior to make Hochong not a heavy burden. Several more measures were taken; banning additional collection other than official items needed for revision of population register, cutting off alteration of information in register, and so on. Functionaries were considered thoughtfully by acknowledging their influence on the local community and their service in the practice. Yet, Jeong was still skeptical about the application of his method and stability of its utility, presumably because he realized the barrier of reality too high to resolve the structural problem of the population register by mere the authority of the magistr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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