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ERD
논문KCI 등재

2~4세기 진한 지역 목곽묘 유형의 확산과 수용 과정

A Study on the Process of Transmission and Acceptance of Wooden Chamber Tombs in the Jinhan Region from the 2nd to 4th Century

0

조회

0

다운로드

1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주제분류역사학

초록

2~4세기 진한 지역 집단이 축조한 목곽묘는 크게 매장시설과 부장품으로 구성되었다. 매장시설과 부장품은 하삼정Ⅰ․Ⅱ유형과 옥성리․마산리유형으로 구분하여 개념화할 수 있으며, 두 유형은 각각 2세기 중엽과 3세기 후엽에 제각기 시기를 달리하여 유행하였다. 목곽묘 유형의 유행은 주도적인 역할을 한 ‘확산집단’과 그 반대의 입장에 있었던 ‘수용집단’ 사이의 상호작용에 따라 이루어졌다. 이를 확산집단과 수용집단의 관계로 정의한다면, 확산집단은 진한 지역에서 중심세력 또는 거기에 편승한 세력으로 여겨지며, 수용집단은 그 반대의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목곽묘 유형의 확산과 수용은 확산집단과 수용집단의 물리적 거리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관계에 따라 수용 시점이 결정되었다. 하삼정Ⅰ․Ⅱ유형이 확산될 때는 대체로 높은 위계의 목관묘를 축조한 집단(황성동유형집단)이, 옥성리․마산리유형이 확산될 때는 하삼정Ⅰ․Ⅱ유형집단에서 수용 시점이 늦었음을 알 수 있었다. 확산집단이 매장관념을 확산시키는 데 있어 강제권력이 작용했을 개연성은 낮았을 것으로 파악되었다. 확산집단과 수용집단 사이에서 위계관계를 나타낸 것은 매장관념(유형)의 수용 정도가 아니라 착장형(도검류)과 보유형 기물에 있었다. 대표적인 예로 옥성리․마산리유형의 목곽묘가 확산될 무렵, 포항 남성리유적에서는 세장방형목곽묘(Ⅰ-1호)가 이혈주부곽식목곽묘(Ⅱ-13호)보다 높은 위계의 무덤이었다. 특정 목곽묘 유형의 확산에 따른 매장시설과 부장품의 변화는 양자가 동시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대체로 후자가 먼저 바뀌는 경향이었다. 이런 경향은 수용집단에서 조금 더 명확하게 나타났는데, 시간적인 간극은 해당집단의 능동적 대처방식에 따라 조금씩 달랐다. 그리고 부장품의 변화에서 철기류보다 토기류가 더 빠르게 나타난 것은 음식을 사용하는 제례가 가장 먼저 변했음을 암시하였다. 목곽묘 유형의 확산과 수용과정에서 나타나는 지역적 차이는 ‘지역색’이라는 개념과 상통하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Abstract

The wooden chamber tombs built and used by groups in the Jinhan region between the second and fourth centuries largely consist of two structures, a burial chamber and a storage for funerary objects. These structures, and the funerary objects discovered in Jinhan graves can be classified into two groups, namely the Hasamjeong I and II types and the Okseong-ri and Masan-ri types, which represent the predominant cultures of the area in the mid second and the late third century respectively. This process of cultural flow resulted from interactions between the two groups, with one transmitting a culture and the other accepting it. The group that played an active role in the cultural flow built new cemeteries for the communities, while the group receiving the new culture decided when to accept it based on their relationship with the first. It is unlikely that there was any form of coercion involved in the process of accepting a specific form of burial by the second. It was primarily the “wearing-type funerary objects” (knives and swords, for example) and the “retention-type funerary objects” which mark the hierarchical relationship between the “transmission group” and the “acceptance group”. As for the changes in the burial facilities and funerary objects, the change to the second preceded that to the first. While there was no difference in the order of change between the transmission group and the acceptance group, the time required for the acceptance of the burial facilities and funerary objects in the acceptance group varied according to individual groups.

참고문헌 (41)

  1. ⾦⿓星, "新羅의 高塚과 地域集團-⼤邱․ 慶山의 例" (1998), 춘추각
  2. 신녕-영천1 국도확장공사 구간 내 永川 華南里 新羅墓群Ⅰ-木槨墓, "朴光烈", (財)聖林文化財硏究院, ~ (2013)
  3. 義城 ⼤里里 3號墳, "박정화", 慶北⼤學校 博物館, ~ (2006)
  4. 蔚山蔣峴洞遺蹟Ⅲ-Ⅳ地區 ⾭銅器․ 三韓․ 統一新羅, "蔚山文化財硏究院", (財)蔚山文化財硏究院, ~ (2013)
  5. 李盛周, "토기제작의 技術⾰新과 生産體系-원삼국시대 영남 지역의 토기유물군과 그 변화에 대한 해석" (2014), 학연문화사
  6. 이희준, "신라고고학연구" (2007), 사회평론
  7. 김대환, "신라고고학개론 上" (2014), 진인진
  8. ⾦榮珉, "嶺南地域 三韓後期文化의 特徵과 地域性-洛東江 東⻄岸地域 比較를 中心으로-", 석사, pp.1996
  9. 김용성, "신라 고총체계의 관점, In 신라와 가야의 경계", 영남고고학회 창립30주년 기념 제23회 정기학술발표회 (2014), 영남고고학회
  10. Ⅴ. 고찰, In 경주 황성동유적 590번지Ⅴ, "김호진",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 ~ (2015)
  11. 徐姈男, "伽耶考古學論叢 2" (1997), 駕洛國史蹟開發硏究院
  12. 申敬澈, "釜山․ 慶南出⼟ 瓦質系⼟器", 韓國考古學報, 12 (1982), 韓國考古學會
  13. 신경철, "가야사논집2-가야와 신라" (2001), 김해시
  14. 申東昭, "嶺南地⽅ 原三國時代 鐵斧와 鐵矛의 分布定型 硏究", 碩士, pp.2007
  15. 우병철, "궐수형철기를 통해 본 진·변한 정치체의 상호작용 – 대등 정치체 상호작용 모델(peer polity interaction model)의 적용 -", 한국상고사학보, 65(65), pp.75~105 (2009), 한국상고사학회
  16. 윤온식, "3세기대 동해 남부 지역 토기 양식의 형성과 변천", 석사, 고고인류학, pp.2001
  17. 윤온식, "4세기대 함안지역 토기의 변천과 영남지방 토기의 「樣式」論", 東垣學術論文集, 8 (2006), 국립중앙박물관
  18. 윤온식, "嶺南地域原三國時代後期祭儀土器의 設定 -포항지역 자료를 중심으로-", 한국고고학보, (76), pp.23~60 (2010), 한국고고학회
  19. 윤온식, "2~4세기 동해남부지역 목곽묘의 유형과 전개", 중앙고고연구, (20), pp.25~72 (2016), 중앙문화유산연구원[DOI]
  20. 윤온식, "2∼4세기 경주지역 목곽묘의 位階와 時空的 변화", 야외고고학, (26), pp.39~74 (2016), (사)한국문화유산협회[DOI]
  21. 윤온식, "경주지역 목관묘와 목곽묘의 조사와 연구, In 신라고분 조사 현황과 전망", 쪽샘지구 신라고분유적 발굴조사 10주년 기념 학술대회 자료집 (2017), 경주문화재연구소
  22. 윤온식, "斯盧國考古學 硏究", 박사, pp.2019
  23. 윤온식, "斯盧國의 洛東江流域 進出과 ⼤邱 八達洞遺蹟, In 유라시아 고고와 문화", 경북대학교 고고인류학과 40주년 기념 논총 (2020), 경북대학교 고고인류학과 40주년 기념 논총 간행위원회
  24. 李盛周, "新羅式 木槨墓의 展開와 意義, In 신라고고학의 제문제", 제20회 한국고고학전국대회 (1996), 한국고고학회
  25. 李盛周, "木棺墓에서 木槨墓로", 新羅文化, 14 (1997), 東國⼤學校 新羅文化硏究所
  26. 이성주, "原三國時代 土器에 대한 理論的 論議의 方向 -영남지방의 토기자료를 중심으로-", 선사와 고대, (26), pp.5~40 (2007), 한국고대학회[DOI]
  27. Ⅴ. 고찰, In 蔚山下垈遺蹟-古墳Ⅰ, "李在賢", 釜山⼤學校博物館, ~ (1997)
  28. 李在興, "慶州地域 木槨墓 硏究", 석사, pp.2006
  29. 이재흥, "경주지역 적석목곽묘의 출현과정에 대한 일고찰", 영남고고학, (43), pp.33~57 (2007), 영남고고학회
  30. 李柱憲, "慶州地域 木棺․ 木槨墓와 斯盧國, In 사로국시기의 경주 무덤과 지역집단", 제34회 한국상고사학회 학술발표회 (2006), 한국상고사학회
  31. 이진혁, "2-4세기 포항 옥성리 일대 고분군의 양상과 그 집단의 동향", 한국고고학보, (111), pp.152~193 (2019), 한국고고학회
  32. 이한상, "4세기 전후 신라의 지방통제방식-분묘자료의 분석을 중심으로-", 역사와 현실, 37 (2000), 한국역사연구회
  33. 李熙濬, "4-5세기 新羅의 考古學的 硏究", 박사, 고고미술사학, pp.1998
  34. 이희준, "경주 황성동유적으로 본 서기전 1세기~서기 3세기 사로국", 신라문화, 38, pp.137~186 (2011), 신라문화연구소
  35. 장기명, "경주지역 원삼국시대 분묘의 철기부장유형과 위계", 한국고고학보, (92), pp.80~123 (2014), 한국고고학회
  36. 車順喆, "同穴主副槨式 木槨墓 硏究-洛東江東岸地域을 中心으로-", 碩士, pp.1999
  37. 최병현, "신라 조기양식토기의 설정과 편년", 영남고고학, (63), pp.105~156 (2012), 영남고고학회
  38. 최병현, "신라 조기 경주지역 목곽묘의 전개와 사로국 내부의 통합과정", 한국고고학보, (95), pp.102~159 (2015), 한국고고학회
  39. 최병현, "원삼국시기 경주지역의 목관묘·목곽묘 전개와 사로국", 중앙고고연구, (27), pp.29~104 (2018), 중앙문화유산연구원[DOI]
  40. 崔鍾圭, "陶質⼟器 成⽴前夜와 展開", 韓國考古學報, 12 (1982), 韓國考古學會
  41. 홍보식, "신라의 중심과 주변, In 고고학에서의 중심과 주변", 제20회 영남고고학회 학술발표회 (2011), 영남고고학회

관련 논문AI추천

이 간행물의 다른 논문 (13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