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세기 동해남부지역 목곽묘의 유형과 전개
Cultural Classification and Development Process of Wooden Chamber Tombs in the Southern Coastal Area of the East Sea in the 2nd~4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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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남지방에서 목곽묘를 축조한 집단은 크게 목관묘의 전통을 계승하지 않은 집단(A)과 계승한 집단(B)으로 구분할 수 있다. 후자는 다시 독자적인 매장관념을 주도한 집단(B)과 그렇지 않은 집단(C)으로 나뉜다. A집단은 2세기 후반부터 신식와질토기의 부장을 주도하고, 3세기 이후에는 세장방형 동혈주부곽식 목곽묘를 축조하였다(하삼정Ⅰ·Ⅱ 유형). B집단은 3세기 후엽에 장방형 이혈주부곽식 목곽묘를 축조하고, 도질토기의 부장을 주도하였다(옥성리·마산리 유형). C집단은 A집단과 B집단의 문화를 선별하여 수용하는 입장에 있었다(황성동 유형). 하삼정Ⅰ·Ⅱ 유형 집단은 목곽 바깥에 기물을 거의 부장하지 않았고, 토기류를 중심으로 하는 보유형 器物을 피장자의 足部 아래에 모아서 부장하는 부곽의 개념을 도입하였다. 부장품의 구성면에서는 제의적 기능이 강조된 토기류와 철기류(판상철모 등)를 선호하였다. 이 문화의 중심지는 경주 도심 지구 이남과 울산 태화강 이북을 포함하는 지역이었다. 옥성리·마산리 유형 집단은 충전토에 보유형 기물을 부장하는 관념이 있었으며, 부곽의 개념은 뚜렷하지 않았다. 부장품의 구성면에서는 일용토기와 실용성이 있는 철기류(삽날, 쇠스랑 등)를 선호하였다. 또 그들은 목곽을 불에 태우기도 하고, 후손들은 봉토에 기물을 매납하기도 하였다. 이 유형의 중심지는 포항과 김해지역이었으며, 동해남부지역에서는 대개 하삼정Ⅰ·Ⅱ 유형과 섞여 있었다. 이 집단은 3세기 후엽에 들어 하삼정Ⅰ·Ⅱ 유형의 관념(부곽과 제의토기의 개념)을 일부 수용하여 새롭게 그들의 정체성을 표현하였다. 그들은 異穴의 형태로 부곽을 만들고, 고배와 기대를 주축으로 하는 새로운 모양의 제의토기를 부장하였다. 그리고 적석, 순장, 철정 부장 등 새로운 개념의 장례문화를 주도해나갔다. 동해남부지역에서는 대체로 3세기 후엽을 기점으로 하여 두 유형이 시기를 달리하여 유행하였다. 처음에는 하삼정Ⅰ·Ⅱ 유형이 유행하다가 3세기 말 이후부터는 옥성리·마산리 유형이 대두하여 주변으로 확산되었다. 반면 김해지역에서는 2세기 중엽 이후 계속해서 해당유형이 지속되었다.
Abstract
Wooden chamber tombs in Youngnam area can be classified into two groups: Group B that succeeded the traditional wooden coffin tombs and Group A that did not. Group B can be further subdivided into Group B that led a unique burial framework and Group C that did not. Group A led the new type of high-fired earthenware since late 2nd century and built the single-pit wooden chamber tombs in the mid-3rd century. Group B built the double-pit wooden chamber tombs in the late 3rd century and led the stoneware culture. Group C accepted both cultures of Group A and Group B. Group A buried the funerary objects inside of the wooden chamber and employed the concept of secondary chamber where the retention-type funerary objects of the dead are buried under the feet of the dead. As for the composition of funerary objects, earthenware and ironware which were made focusing on ritual functions were preferred. The cultural centers were the southern part of downtown Gyeongju and northern part of Taewha River in Ulsan. Group B had a clear concept of burying retention-type funerary objects are funerary goods outside the wooden chamber and they had no clear concept of a secondary chamber. As for the structure of funerary objects, they preferred daily-use potteries and practical ironware. They used to burn wooden chambers or buried plowing tools such as shovel blades and pitchforks. The cultural centers were Pohang and Gimhae regions and the group was mixed with Group A in the southern region of East coast area. Group B expressed their new identity by partially incorporating the concept of Group A in the late 3rd century. They built secondary chambers in the form of double-pits and buried ritual-use potteries of new form led by mounted dishes and pottery stands. They also led the new concept of funerary culture including piled stones, burial of the living with the dead, and burial with iron plates. In the southern coastal region of the East Sea, cultures of the two groups were popularized in different times beginning the late 3rd century. Group A culture prevailed in the beginning, while Group B culture emerged in the late 3rd century and expanded since then. In contrast, in Gimhae area, culture of Group B continued to dominate since the mid-2nd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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