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武王의 遺詔와 大王巖
The testament and Daewangam Hermitage of King Mun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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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글은 신라 문무왕이 죽음 직전에 신문왕에게 남긴 유조의 내용을 간단하게 검토하는 과정에서 특히 화장하라고 한 사실을 대왕암과 관련지어 살펴본 것이다. 문무왕이 남긴 유조는 유언이라기보다는 명령과 같은 것이었다. 이는 신라왕이 남긴 유조 중에서도 매우 특징적이라 할 수 있다. 문무왕은 유조에서 생전에 쌓았던 업적을 과시하는 한편 아들의 왕위계승을 염려하여 관 앞에서 즉위토록 하였다. 이와 같은 유조는 그대로 시행되었고, 이후 신문왕이 왕권을 강화하는 기본 토대로 작용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무왕이 남긴 유조와 관련하여 주목할 점 가운데 하나는 죽은 후 화장하여 간소하게 장례를 치르라고 한 것이다. 또한 문무왕의 유조 가운데 화장과 관련한 내용은 사천왕사에 세워졌던 「문무왕릉비」에서도 일부 찾아볼 수 있어 주목된다. 문무왕이 사망하자 신하들은 그의 명에 따라 동해에 장골처를 마련하였다고 한다. 현재 그를 화장한 장소가 어디인가에 관해서 의견이 많으나, 사천왕사에서 장례의례를 거행한 다음 능지탑에서 화장하였을 가능성이 제일 크다. 이는 사천왕사와 능지탑의 거리가 그다지 멀지 않다는 점에서 가능한 추론이다. 문무왕의 시신을 능지탑에서 화장한 다음 유골을 동해 대왕암에 장골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현재 대왕암은 문무왕과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설명되고 있으며, 사람들의 마음속에 문무왕과 관련하여 남겨진 설화적인 것으로 치부되고 있다. 그러나 남겨진 여러 가지 기록을 통해서 볼 때 대왕암이 문무왕의 장골처일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대왕암이 문무왕의 수중침릉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의 장골처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어 더욱 문제가 있다. 문무왕의 장골처에 대한 새로운 장소가 찾아지지 않는 이상 대왕암은 문무왕 육신의 일부와 혼이 서려 있는 상징적인 곳으로 볼 수밖에 없으며, 신라 사람들과 현재인들에게 있어 문무왕의 영원한 휴식처로 볼 수밖에 없다.
Abstract
King Munmu of Silla left testament just before his death. In addition, his testament is noteworthy as it can be found in the epitaph of King Munmu's tomb, which was currently built in Sacheonwangsa Temple. It can be said that the testament he left was more like an order than a will. This can be said to be very characteristic of the testament left by King Silla. King Munmu was worried about his achievements in his lifetime and his son's succession to the throne through testament, so he was crowned in front of the government office. He also asked for a simple funeral by cremating after his death. It is no exaggeration to say that such an testament was presented as it was, and that King Sinmun later served as a basic framework for strengthening the kingship. Honor King Munmu, who was left by a among notable point in relation to tastament is in a charnel east sea. Currently, there are many opinions on where he was cremated, but it is most likely that he was cremated at the Neungji Pagoda after holding a funeral ceremony at Sacheonwangsa Temple. This is speculative in that the distance between Sacheonwangsa Temple and Neungjitap Pagoda is not very far. It is highly likely that the remaining bone powder after cremating King Munmu's body at the Neungji Pagoda was stolen from Daewangam Hermitage. Currently, Daewangam Hermitage is explained as not related to King Munmu, and is regarded as a legend left in people's minds regarding King Munmu. However, from the various records left behind, it is highly likely that Daewangam Hermitage is the iliac site of King Munmu. If Daewangam Hermitage is not King Munmu's underwater sediment, there is a further problem as it cannot provide an alternative to where to find it. Unless a new place for King Munmu's Janggolteo is found, Daewangam Hermitage can only be seen as a symbolic place with King Munmu's bones, and remains an eternal symbol for Silla people and present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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