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경주민의 항쟁과 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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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고려 무신집권기에 각지에서 농민항쟁이 일어났는데, 가장 특기할 만한 지역이 경상도 지방이다. 특히 경주민의 항쟁은 민란의 총체성을 지니고 있다고 할 정도로 다양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고려 무신집권기 농민항쟁은 토호나 지방관에 대한 저항, 중앙정부에 대한 항거, 토호들과 제휴하여 중앙에 저항하거나 옛 국가에 대한 향수가 표면화되는 등 다양한 형태가 있는데 경주는 이같은 전형적인 모습들이 모두 나타나고 있다. 神宗 5年에 발생했던 慶州民의 抗爭에서 보이는 신라부흥 운동은 경주민의 고려정부에 대한 소외감이 폭발된 것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수탈체제에 대한 항거였다. 즉 신라부흥이 경주지역민을 단결시키는 데는 유리한 선언적 의미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농민층보다는 토호 등 지배계층의 절실한 과제였을 뿐이라고 생각된다. 국가에 변란이 일어났을 때 여러 신들에 제사지내는 것은 고려왕조의 일상적인 일이었지만 경주민의 항쟁 때 정부는 무려 33차례나 제사를 지내고 있다. 그만큼 경주지역민의 반란 규모가 크고 민심의 동요가 심각하여 고려왕조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이때 지낸 다양한 신들에게의 제사는 고려사회가 불교 뿐 아니라 도교, 민속종교 등 다양한 종교가 평화공존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로 보아 고려시대는 불교국가로 단정지을 것이 아니라 사상과 신앙의 다원성이 더욱 연구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같이 고려시대는 부처님 뿐 아니라 개국시조인 太祖眞前, 龍王 · 天神 · 山神 · 城隍神 · 太一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신이 존재하였고, 국가는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그들에게 제사를 지내고 있었다. 이같은 다양한 신은 불교 · 도교 민간신앙적 대상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이 신앙은 불교가 들어온 이후에도 계속 유지되어, 그것이 민란이 일어났을때 난을 일으킨 쪽이나 진압하는 쪽 모두 제사를 지낸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고려 후기로 갈수록 원의 세력을 등에 업은 불교의 득세로 세력이 위축되어 갔다. 충숙왕대 경주지방에서 주민들의 돼지 살해사건은 민속신앙의 위상을 약화시켜 국가에 편입시키려는 지방관과 이에 반발하는 주민들의 갈등을 나타내는 모습이라 할 것이다. 이어서 조선시대에 가서는 성리학의 그늘에 가려 위축되긴 하지만 전통적인 신앙의 명맥은 그대로 이어져 내려갔다고 생각된다.
Abstract
Uprising of the peasants were frequently happened during the period of the government of the Military Rule in Koryo dynasty. I will focus on the Kyongju(Kyongsang-Do) inhabitants' struggle in 1202. These uprising of the Kyungju were characteristic of the those period such as the struggle against landed proprietors and local officials, against national government and the nostalgia of the Silla Kingdom. For example, The reasons of the Kyung-Ju inhabitants' struggle at King SinJong were not only the sense of alienation on the Koryo dynasty but also the exploitation on the peasants. The restoration of the destroyed Silla kingdom took a key role of the Kyung-Ju inhabitants' struggle. This issue was not for the people's interest but for the Koyong-Ju landed proprietors' purpose. When they met the national disorder, sacrifice on the gods was a dally events of Koryo dynasty. In the Kyongsang area, such close cooperation among rebel forces had given them strength to continue their struggle for some ten years. During the Kyongju inhabitants' struggle, Koryo government performed the 33th rite. The government regarded this struggle as the serious national disorder. At that time, these rites included the Buddhism, the Taoism, and various popular believes. It was the Buddhism that was the popular national belief in the Koryo dynasty. However many believes were remained to coexist peacefully. These gods worked for the purpose of their credence both the Government and the rebel bands. The various popular believes at Koryo dynasty were cowered because of the Mongolian Buddhism at the King Chongsuk period and the Sung Confucianism at Chosun dynasty. In the end of these popular uprisings were suppressed, but their believes based on the various popular believes and these believes are keeping alive at this pres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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