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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神武-文聖王代의 정치 변동과 三韓一統意識의 출현

Political Changes that occurred during the reigns of Shilla kings from Shinmu-wang(神武王) to Munseong-wang(文聖王), and the Emergence of the Notion of “Three Hans becoming One(三韓一統意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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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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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신라 신무-문성왕대 무열왕계가 복권되면서 체제 통합의 이념으로서 三韓一統意識이 출현하는 양상을 검토한 것이다. 이것은 앞서 흥덕왕이 金庾信을 興武大王으로 追封하여 통합의 상징으로 활용하려 한 것에서 ‘통일’전쟁의 경험을 정치 이념으로 활용하는 단계로 나아가게 됨을 반영한다. 이러한 변화의 계기를 제공한 것은 무열왕의 후손인 金陽이었다. 그는 흥덕왕 사후 벌어진 왕위쟁탈전에서 均貞을 지원하였고, 그 아들 祐徵이 淸海鎭에 들어가자 군사를 모아 합류하였다. 그는 청해진의 군대를 이끌고 왕경을 공격하여 민애왕을 제거하고 신무왕을 옹립하였다. 이는 무열왕계가 정치적으로 복권되는 기반을 제공하였다. 반면 김양의 從父兄 金昕은 헌덕왕 때 발탁되어 민애왕 정권의 핵심이 되었다. 그는 청해진의 군대에 맞선 大昕과 동일인으로 파악되며, 패전 후 은거하다가 金式의 모반에 연루되어 처형되었다. 하지만 그의 전기에서는 사망 일시를 앞당김으로써 이를 은폐하였다. 김양은 문성왕대의 정국을 주도하며 정치적 입지를 굳혔다. 문성왕의 妃父가 되었고 연이은 모반을 제압하면서 정권 안정에 기여하였다. 이것은 무열왕의 공업으로서 ‘一統三韓’이 환기되는 전환점이 되었다. 이는 김양 사망 후 김유신의 예에 따라 賻儀하고 무열왕릉 옆에 배장하도록 한 것에서 드러난다. 문성왕대 건립된 「聖住寺碑」에서 삼한일통의식의 출현을 확인할 수 있다. 성주사는 金仁問의 受封地에 김흔의 발원으로 창건되었으며 문성왕이 寺名을 내려주었다. 김흔이 사망한 후 魏昕(金陽)이 사업을 이어받아 불전 완공과 불상 조성, 탑의 건립 등을 마무리하였다. 이 비에는 절의 연원을 백제 법왕 때의 사적으로 연결하고 당시를 ‘三韓鼎足’으로 인식하는 한편, 신라를 辰韓으로 지칭하는 등 삼한일통의식이 반영되어 있다.

Abstract

Examined in this study is how the Notion of the “Three Hans becoming One(三韓一統意識)” was formed as an ideology to unite the Shilla dynasty during the reigns of Shilla kings such as Shinmu-wang and Munseong-wang. Before, King Heungdeok-wang posthumously entitled Kim Yu-shin(金庾信) as “Heungmu Daewang(興武大王),” in order to suggest him to the public as the symbol of dynastic unity. We can see that the Shilla government was learning how to utilize all its experiences from the unification war in political maneuvers. The person who provided an opportunity to take this situation to the next level was Kim Yang(金陽), who was the descendant of past king Muyeol-wang. He was one of the individuals who were instrumental in Shinmun-wang’s enthronement, and was one of the leading figures of the government during king Munseong-wang’s reign. With his rise to power, the descendants of Munseong-wang were politically reinstated, and Muyeol-wang’s idea of “Unifying all three kingdoms(‘一統三韓’)” was once again remembered and discussed. After he died, he received respects from the country just like Kim Yu-shin did, and he was buried at the side of Muyeol-wang’s mausoleum. The construction of the Seongju-sa(聖住寺) temple, which proceeded during the reign of King Munseong-wang, was initiated at the request of Kim Heun who was also the descendant of king Muyeol-wang, and was completed with the support of Kim Yang. In an epigraph which documented the situation, the history of the temple was recorded as a one which went back to the Baekje days, when three kingdoms were coexisting(‘三韓鼎足,’ according to its description), while Shilla was referred to as “Jinhan(辰韓).” We can see the aforementioned notion was gaining more and more ground at the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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