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미상 관등 南邊第一에 대한 試論
A Test Study on the Nambyeonjeil, Unknown Official post of Si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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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고는 남변제일에 대해 관등인가? 관등이라면 무엇인가? 중대에서만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등 세 가지에 주목하였다. 먼저 남변제일을 관등으로 보는 이유는 첫째, 『삼국사기』에 미상 관명으로 나와 있다는 점이다. 둘째, 『삼국사기』에 ‘授位一吉飡’, ‘授位沙飡’처럼 ‘授位’ 다음에 관등이 붙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셋째, ‘○○第一’의 용례에서 甲科第一人, 嶺南第一州처럼 第一 뒤에는 人이나 州와 같이 생략된 표현이 있는데, ‘授位南邊第一’은 ‘授南邊第一位’와 같은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넷째, 남변제일은 진상품에 대한 국왕의 보상품으로서 ‘집 한 채’라는 현물로 볼 수 없는데, 그 이유는 거주지를 이주시키면서까지 포상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授位南邊第一’의 남변제일은 관등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남변제일을 大舍라고 보는 이유는 첫째, 第一이라는 표현에서 第二도 상정할 수 있으므로 南邊은 다수가 모인 집단, 조직, 계층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남변의 용례를 보면, 南境, 南方과 같이 ‘남쪽’이라는 의미로 쓰였을 뿐이다. 다만 관등의 의미가 있고, 집단ㆍ조직ㆍ계층을 포함하는 용례로서 梁代의 南座, 唐代의 南床, 고려의 南行, 조선의 南床을 주목할 수 있다, 남쪽에 자리한 집단은 국왕의 조회시 舍人層이 있고, 관청의 會座時 舍知級(4등관)이 있다. 둘째, 고려시대의 南行이라는 용례는 南座라는 의미에 더해 그 자리에 앉는 특정 계층을 지칭하였는데, 蔭官이나 기술직ㆍ잡직을 뜻하는 南班이라는 표현도 쓰였다. 이를 참작해 보면, 기술직인 匠尺層도 남변의 계층에 포함시킬 수 있다. 셋째, 지역사회에서 남변에 자리한 계층은 외위의 干群에 해당하는 촌주층 중 세 번째 등급인 상간-하간층(차촌주)을 들 수 있다. 따라서 남변제일은 舍人層ㆍ4등관 舍知級ㆍ匠尺層ㆍ차촌주층에서 찾을 수 있고, 이 집단ㆍ계층들의 제1 관등은 大舍이며, 제2 관등은 小舍로 비정된다. 끝으로 중대에서만 쓰인 이유를 추론해 보면, (授位)東邊第一, 西邊第一이라는 표현이 보이지 않는 이유와 관련 있다. 동변과 서변은 남변보다 상급의 관등을 의미하였을 것이다. 그러한 표현은 외람된 것으로 사용하기에 조심스러웠을 것이다. 남변이라는 표현은 동변ㆍ서변의 입장에서 卑稱으로 불렸던 듯하고, 점차 표현을 자제하거나 금하는 조치가 마련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 시어사의 南床[南榻], 고려 僕射의 南行, 조선 正字의 南床처럼 남변제일은 大舍의 별칭 사례로서 추가할 수 있다.
Abstract
The Nambyeon (南邊) basically has geographical meaning. Analyzing terms similar to the Nambeon, we can divide them into three main categories. First, as a regional category, we can trace the local-based chief group and Baekje-refugee group. Second, as a category of thought, it can be noted that the Namdan (南壇), Namgue (南郊), and Namdae (南臺) based on the symbolism of the southern part. This makes it possible to note the red color group and the Yebu (禮部). Third, as an institutional category (conventional concept), it can be noted the Namsang (南床) and Namban (南班) based on the promotion system of five stages of Silla. This allows us to pay attention to the 4th group of the Namsang (南床), the Sain (舍人) group, and the jangchuk (匠尺) group. If the Nambeon (南邊) was referring to the village chief group, it would have been one of the 10th 10th-ranked Tanama (大奈麻)-12th daesa (大舍). The unsettled hypothesis of Baekje-refugee is thought to be excessive reasoning, and it may be excluded. If the Nambyeon (南邊) are the sain (舍人) group, it is 12th daesa (大舍) to 13th saji (舍知), and if it is the red color group is 6th achan (阿飡) to 9th gubboelchan (級伐飡), and and if it is the fourth position, it is 12th to 13th. The jangchuk (匠尺) group is also ranked 6th sanggan (上干; 京位 대사) ~ 11th achek (阿尺 ; 경위 造位). Taken together, the highest grades of each class can be narrowed down to Achan, Daenama, and Daesa. However, there seems to have been a clear boundary between the Daenama and Nama, the Daesa and Saji. The Daenama and Nama were a grade that divided 4th or 5th dupum (頭品), and 4th dupum were not owned. It was also a grade that students of national school (國學) could receive after completing 9 years of study. It was not that easy to get, so it can not be regarded as the best of the Nambeonjeil. Therefore, Achan can be excluded, and what remains is the Daesa. The Nambeon The south side is thought to be an expression due to seating arrangements within each government office. Although the Nambeonjeil is directly related to the 4th dupum (頭品), the etymology seems to have been based on the Namsang (南床) and Naman (南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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