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ERD
논문KCI 등재

신라 마립간기~중고기 모량부의 정치적 경관

The Political Landscape of Moryang-bu from the Maripgan period to the Middle Ancient period of Silla

2

조회

0

다운로드

0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주제분류역사학

초록

현재까지 금척리 고분군의 발굴 자료만을 근거로 하면, 금척리 집단은 3세기 말부터 성장하다가 5세기 후반 급부상했으며, 금척리 고총군은 마립간릉의 배총으로 묻혔던 인물들 중 모량부 출신이 그들의 전통적인 묘지로 다시 돌아와 조영한 것이다. 그들이 선조들의 묘지로 다시 돌아온 이유는 모량부 출신이라는 계보를 강조할 필요성이 대두되었기 때문이다. 방내리 고분군의 조영은 곽묘에서 실묘로의 변화라는 매장시설의 전환에 따른 묘역의 이동이라는 계기도 있겠지만 금척리 고총군을 조영한 유력집단에서 왕비를 배출하면서 성장한 유력가문이 그들의 지위를 과시하고 현창하기 위해 공동체적 성격이 강한 금척리 고분군을 탈거해 다른 묘지를 조영한 결과이다. 또 이 시기는 신라 6부의 성격이 단위정치체에서 행정구역으로 변화하는 때이고, 이와 함께 수취 단위가 공동체에서 가족이나 가호 단위로 재편되고 있었는데, 석실은 그러한 사회적 변화와 함께 도입되었기 때문에 제도적인 차원에서 실묘가 도입되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결론적으로 금척리 고분군이 단위공동체인 모량부를 표상하는 묘지라면, 방내리 고분군은 유력가문을 현창하는 묘지이며, 행정구역화된 모량부의 성격이 반영된 묘지로 이해할 수 있다.

Abstract

Until now, based only on the excavation data of Geumcheok-ri Tombs, the Geumcheok-ri (金尺里) Group grew from the end of the 3rd century and rapidly emerged in the late 5th century, and among the figures buried as the associated mound of Maripgan (麻立干) Tomb, Moryang-bu (牟梁部) returned to their traditional site and built it. The reason why they returned to the graves of their predecessors is that there is a need to emphasize the genealogy of being from Moryang-bu (牟梁部). The construction of the Bangnae-ri (芳內里) tomb group also had an opportunity to move the grave area due to the change in burial facilities, which was changed from a wooden tomb to a stone chamber tomb, but it was seen as the result of the removal of the Geumcheok-ri (金尺里) tomb group, which has a strong community character. In addition, during this period, the character of the Silla's Six Bu (6部) changed from a political body to an administrative district, and along with this, the tax collection position was reorganized from community to a family position. Since stone chamber was introduced with such social changes, it shows that chamber tombs were introduced from an institutional level. In conclusion, if Geumcheok-ri (金尺里) Tombs represent Moryang-bu (牟梁部), a common body, the Bangnae-ri (芳內里) Tombs are graves that honor influential families, reflecting the nature of the administrative district.

참고문헌 (25)

  1. 경주 금척리 신라묘, "국립경주박물관", ~ (2021)
  2. 김선주, "신라의 고분문화와 여성" (2010), 국학자료원
  3. 박형열, "고신라 고분군 연구" (2021), 학연문화사
  4. 이희준, "신라고고학연구" (2007), 사회평론
  5. 홍보식, "신라 후기 고분문화 연구" (2002), 춘추각
  6. 김대환, "동아시아 종묘와 무덤제사의 비교고고학" (2017)
  7. 김대환, "고고학으로 본 권력과 공간" (2023)
  8. 김대환, "고분군으로 본 모량부 내 중심집단의 변동", 신라사학보, 58 (2024), 신라사학회
  9. 김용성, "토기에 의한 대구․경산지역 고대분묘의 편년", 한국고고학보, 35 (1996), 한국고고학회
  10. 김원용, "사로6촌과 신라고분", 역사학보, 70 (1976), 역사학회
  11. 니이로 이즈미, "동아시아 종묘와 무덤제사의 비교고고학" (2017)
  12. 김재홍, "신라 모량부의 성격과 금척리고분군", 한국고대사연구, 114 (2024), 한국고대사학회
  13. 박성용, "묘지의 공간구성과 사회관계의 배열-신촌의 사례", 비교문화연구, 8(1) (2002), 서울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14. 박성용, "명망의 문화정치-종족의 상징적 자본과 종가의 사회적 위상", 민속학연구, 52 (2023), 국립민속박물관
  15. 심현철, "신라 왕릉의 변천과 마립간릉", 한국고고학보, 116 (2020), 한국고고학회
  16. 심현철, "금척리 고분군에 대한 예비적 고찰", 신라사학보, 54 (2022), 신라사학회
  17. 심현철, "서악동 왕릉군의 묘제에 관하여", 신라사학보, 61 (2024), 신라사학회
  18. 옥재원, "신라 적석목곽묘의 조영 양상과 권력구조의 변동", 역사와 현실, 106 (2017), 한국역사연구회
  19. 이현태, "금령총의 주인공과 그의 시대" (2024)
  20. 장기명, "월성북고분군의 변천과 마립간기 6부의 내부 조직", 한국고고학보, 132 (2024), 한국고고학회
  21. 전덕재, "경주 사라리고분군 축조 집단의 정치적 성격과 그 변천", 한국상고사학보, 56 (2007), 한국상고사학회
  22. 주보돈, "6세기 초 신라 왕권의 위상과 관등제의 성립", 역사교육논집, 13․14 (1990), 역사교육학회
  23. 주보돈, "문헌으로 보는 신라의 왕경과 월성" (2017)
  24. 주보돈, "황룡사의 창건과 그 의도", 한국사연구, 176 (2017), 한국사연구회
  25. 황종현, "신라 횡혈식 석실묘의 수용과 전개", 박사, 역사․고고학과, pp.2020

관련 논문AI추천

이 간행물의 다른 논문 (16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