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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 후반 呂準의 활동을 통해 본 부민단과 신흥무관학교 측의 동향

The Movement of Pumindan and Sinheung Military School Seen Through Yeo Jun’s Activities in Late 191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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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초록

본고는 부민단이 조직되는 1916년부터 한족회가 조직되는 1919년 5월 직후까지의 시기를 다루었다. 그동안 각종 자료나 연구에서 한족회 및 서로군정서 설립 이후의 사실들은 잘 규명되어 왔지만, 1916년부터 1919 년 사이의 시기는 부민단이나 신흥무관학교와 관련된 활동내용이 거의 언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그 활동내용이 서간도 독립운동의 일관된 지속성과 그 외연을 살펴보는 데 중요하다고 판단되어 검토하였다. 부민단은 경학사를 이은 민단조직이었지만, 한인동포들의 경제적 자립을 도모했을 뿐만 아니라 결사대를 조직하여 무장행동을 시도하였다. 그 연장선에서 1918년 4월 길림에서 독립운동가들이 망라된 東省韓族生計會 가 발족하였다. 생계회의 초대회장은 신흥학교 교장과 부민단 교육회장을 역임한 呂準이었다. 생계회장 여준은 1919년 3월에 군정사를 조직하여 단장이 되었다. 그해 10월 군정사 밑에 급진단이라는 비밀무장결사를 조직하고 역시 단장에 추대되었다. 급진단은 길림에 사무소를 두고, 하얼빈·니콜리스크 등지에서 무기를 수입하고 병사를 모아 국내 진공계획을 수립하였다. 국내 진공계획은 재외 독립운동계 전반이 연관된 연합작전의 성격을 띠었다. 부민단에서 한족회로 이어지는 1910년대 후반의 시기는 서간도 독립운동의 정체기가 아니라, 생계회를 이용해서 만주 이주 한인의 자생책 마련과 국권회복의 방책을 실현하던 시기, 급진단과 결사대를 이용하여 무기를 마련하고 국내 진공작전을 도모하던 도전과 모색의 시기였다. 그리고 그 노력의 효과는 잠시 후 만주지역독립운동가들의 연합작전 속에서 전개된 청산리대첩을 통해서 구현되었다.

Abstract

This paper covered over from the period of 1916 at which Pumindan was organized through around after May, 1919 at which Hanjokhoe was organized. Because until now, concrete activities in this period became nearly unknown in different to activities after organization of Hanjokhoe and the Western Road Military Headquarter. Nevertheless the concrete activities in this period are very important to confirm the consistent persistence and extension of independence movement in Manchuria, so this paper scrutinized the concrete activities in this period. Pumindan was a settlement corporation which succeeded in Kyeonghaksa tried militarized struggles against Japan in addition to promote the livelihood of Korean in Manchuria. In the result, the Society for Korean Livelihood in Manchuria was organized in April, 1918 in Jilin, Manchuria. The first chairman of the Society was Yeo Jun who served as a principal of Sinheung military school and a chairman of the Educational Society of Pumindan. Yeo Jun, the chairman of the Society for Korean Livelihood in Manchuria made up Gunjeongsa together with other independence activists in March, 1919 and became the head of Gunjeongsa. And in October of the year, he also organized Keupjindan, secret military force and became the head of Keupjindan. There was the headquarter of Keupjindan in Jilin city and made plans of advancing operations into Korean Peninsula while importing weapons and recruiting soldiers. Advancing operations into Korean Peninsula had a character of combined operations of independence forces of the outsides. The period of the late 1910s at which Hanjokhoe succeeded in Pumindan was the period of challenge and grope for Korean livelihood by the Society for Korean Livelihood in Manchuria and advancing operations into Korean Peninsula by Korean special forces, not the period of stagnation of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Therefore the effects of efforts came true in the sweeping victory of Cheongsani by combined operations of independence forces in Manchu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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