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해록>으로 본 18세기 제주도 선비 장한철과 섬사람들
The 18th Century Jeju Scholar Jang Han-cheol and Island People from Perspective of the Travel Record <Pyohaer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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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 논문에서는 『표해록』을 통해 18세기 제주도 선비 장한철과 섬사람들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먼저 Ⅱ장에서는 조선시대 표류일기를 간략하게 정리하고, 장한철 『표해록』 작성 과정을 살펴보았다. 『표해록』 은 표류 체험 중 호산도에 있을 때 1차 작성되었고, 제주도로 돌아온 직후 2차 작성되어, 표류 체험이 구체적으로 기록될 수 있었다. Ⅲ장에서는 『표해록』에 나타난 장한철의 삶과 선비적 면모를 살펴보았다. 가족들을 서술할 때 효와 제사를중시하는 선비적 면모가 드러나는데, 이러한 면모는 『표해록』 전체를 관통하였다. 장한철은 유학을 공부하고다양한 책을 읽은 독서인으로서 자신의 지식을 바탕으로 상황을 판단하여 사람들을 설득하였으며, 백성들을이끄는 지도자로서 위기 속에서 사람들을 이끌고 위기가 끝난 후에도 함께 표류한 사람들을 포용하는 모습을보여 주었다. 또 예의를 중시하는 면모도 확인할 수 있었다. Ⅳ장에서는 제주도 선비 장한철의 눈에 비친 섬사람들을 살펴보았다. 함께 표류한 섬사람들은 미신을 믿고, 쉽게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로 그려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함께 위기를 극복한 후 장한철은 섬사람들의 마음을이해하고 그들의 성품이 착하다고 긍정적으로 기술하였다. 또 표류인을 도와준 청산도 사람들, 귀환 과정에서우연히 만나 도움을 준 제주도 사람들을 통해 18세기에 섬사람들이 표류한 동향 사람들을 호의적으로 대하는것을 볼 수 있었다
Abstract
This paper examined 18th-century Jeju scholar Jang Han-cheol and Jeju Island people from the viewpoint of the travel record 『Pyohaerok』. To that end, Chapter Ⅱ briefly summarizes the drifting diary of the Joseon Dynasty and examined the process of writing Jang Han-cheol’s 『Pyohaerok』. 『Pyohaerok』 was primarily written while he stayed in Hosando Island after he drifted ashore, and it was secondarily written right after he returned to Jejudo, making the record very specific. Chapter Ⅲ examines Jang Han-cheol and his scholarly life as described in 『Pyohaerok』. His scholarly spirit was manifested when he described his family, and such spirit prevailed all through the record. Jang Han-cheol studied Confucianism, and read a lot of diverse books, making him a learned man, which enabled him to analyze the situations so as to persuade the people as a leader, thus exercising his leadership through the crisis and encouraging the people drifted. Further, he valued Confucian rites. Chapter Ⅳ examines the Island people from the perspective of Jejudo scholar Jang Han-cheol. The record describes the people drifted together as believing in superstition and easily succumbing to distress. After overcoming the crisis, however, Jang Han-cheol understood the brokenhearted island people and affirmatively described them as good-natured. Further, the record illustrated the Cheongsando people who came to the aid of the drifted people and Jejudo people who he came cross while returning home and who helped the distressed people. This offers a glimpse of the Island hometown people’s favorable treatment of the drifted people from the same town in the 18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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