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제주인의 표류 발생 배경과 실태
Background and State of Jeju People's Drift in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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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조선시대 濟州島라는 특정 공간을 중심으로 濟州人들이 해상활동을 전개해 나가는 가운데 예기치 않게 발생하였던 海難事故 중 ‘漂流’라는 일련의 사건에 주목하였다. 이를 위해 국내・외 사료 속에 단편적으로 산재해 있는 제주도 표류 관련 사례들을 우선 정리, 연표로 작성함으로써 보다 通時的이고 共時的인 안목을 기반으로 제주도를 중심으로 전개된 漂流史의 전체상을 파악하였다. 아울러 표류 제주인들의 항해 전말을 담은 問情기록을 통해 제주인들의 표류 발생 배경을 보다 구체적으로 들여다봄은 물론, 그 실태를 계량화하여 파악해 보았다. 본고에서 고찰한 결과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로, 조선시대 제주해역을 둘러싼 표류가 어떠한 배경과 요인에 의해 발생되었는가를 우선 살펴본 결과, 제주도는 邈在海外・四海孤島의 火山島이자 强風多風의 섬, 육지에서는 대체 불가능한 進上品과 貢物의 생산지라는 자연지리적 입지조건과 더불어 그에 수반되는 護送 등 조선조의 정치・사회・경제적인 복합적 제반 상황에 기인하여 제주인들은 자의적・타의적으로 바다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표류라는 일종의 우발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해난사고에 노출될 가능성이 컸다. 전근대 제주도를 포함한 동아시아 諸國들의 해상교류에 있어 어느 정도의 해양환경을 이용한 경험과 지식이 축적되어 일정한 항로가 형성되어 있었으나, ‘礖’라는 제주바다 주변의 독특한 해저지형과 제주도를 둘러싼 바람(계절풍)・태풍・해류・조류 등이 기존 해상활동의 고정적 틀을 파괴시키는 變數로 작동하여 제주도 해역을 오고 가는 선박들의 표류를 유발하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었다. 두 번째로 이러한 배경 속에 발생되었던 조선시대 제주인들의 표류 실태를 각종 사료를 통해 ‘出海-漂流-漂着-送還’이라는 표류 顚末을 역추적하여 그 발생 규모와 빈도를 시계열적으로 파악한 결과, 제주인들은 365건・4,427명[사망자 760명]이 해난사고와 직면하였고, 이들 중 82.8%에 해당하는 3,667명은 해난사고로 말미암아 일본・유구・중국・대만・안남 등지로 표류해 그곳 국가들로부터 구조・송환되어 본국으로 살아 돌아왔음이 확인되었다. 단편적으로 잔존해 있는 역사적 기록 자체에 의거한 통계이지만, 80%를 웃도는 높은 생존율을 본다면 전근대 시기 조선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제질서 속에서 상호 호의에 입각한 표류인 송환체제가 작동되어지고 있었음을 살필 수 있었다. 요컨대 본 연구 결과를 통해 그동안 단편적으로 연구되어 왔던 제주도의 漂流史를 보다 넓은 시야에서 조망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며, 향후 본고에서 파악한 제주인의 표류 실태를 입체적으로 분석하여 표류 제주인의 존재적 의미를 해명함은 물론, 당시 제주인들의 해상활동 양상과 함께 제주사회의 경제구조 실태를 재조명해 나가고자 한다.
Abstract
This paper focuses on a chain of events, ‘drift’, among maritime accidents that had occurred while the Jeju Islanders were conducting maritime activity in a specific location, Jeju island. The cases related to drifting in Jeju Island, which were scattered in domestic and international historical records, were summarized and chronologically organized. By doing this, the history of drift focused on Jeju Island could be identified based on diachronic and synchronic perspective. With this reference, the background of drift occurrence of Jeju Islanders and its real conditions could ultimately be understood. Through a record of Munjeong, which includes full account of the drifted Jeju Islanders’ voyages, the aspect of Jeju Islanders’ maritime activities and an economic structure of Jeju society were examined. The results of this study can be summarized as follows. First, the occurrence of drifted Jeju Islanders was caused by the distribution of unique submarine topography such as coral reef around the Sea of Jeju. As the winds (seasonal winds), typhoons, ocean currents, and tidal currents surrounding Jeju Island, it acted as variables to destroy the fixed framework of existing maritime activities and caused the drifting vessels around the Jeju Island. Moreover, the tax collecting system became intensified after the 15th century and there were some local products that could not be replaced with products in land. To prepare local tribute and tribute to the King for each period and for its transportation, it became unavoidable for the Jeju Islanders to go out to the ocean. Due to this reason, they had high chance to be exposed to unexpected marine accidents such as drift. Second, through studying the actual situation of drifting of Jeju Islanders in the Joseon Dynasty from many references, the full account of drifting was back-tracked as ‘Go out to sea–Drift–Drifting ashore–repatriation’After examining its occurrence scale and frequency as time sequence, 365 times・ 4,427 Jeju Islanders [760 deaths] faced with the marine accidents. Among these, 82.8%(3,667) of Jeju Islanders came back alive because they were rescued and repatriated after they became drifted to Japan・Ryukyu Kingdom・China・Taiwan・Annam because of the marine accid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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