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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3대 신문을 통해 본 안중근 의거의 의의 ―아사히(朝日), 요미우리(読売), 마이니치(毎日)를 중심으로―

Japaneseʼ Cognition of Ahn Jung-Geun ─Focusing on The Asahi Shimbun, The Yomiuri Shimbun, The Mainichi Shimbun, From 1909 to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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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일본어와문학

초록

안중근은 대한제국 시대 조선의 독립운동가이다. 한국과 일본의 입장에 따라, 안중근에 대한 평가는 정반대이다. 역사인식의 차이가 있으니 이는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일본에서 안중근에 대한 평가는 생각보다 다양하고 사람에 따라 그 평가는 상이하다. 이처럼 안중근에 대한 관심은 양국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관심은 1909년 10월 26일에 있었던 안중근 의거, 당시 국제적으로도 큰 이슈가 되어 주목받았고 역사적으로도 의미있는 사건이었으므로 이와 관련된 연구는 상당히 많다. 그러나 당시 일본 내 자국민들, 즉 일본인들에게 안중근 의거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에 대한 구체적 연구는 아직 미흡하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1909년부터 1910년까지 일본인 대상으로 발행된 일본 내 신문에 실린 안중근 의사와 관련된 신문 기사의 분석을 통해서 안중근 의거에 대한 일본인의 인식을 살펴보고자 한다. 전수범위를 1909년부터 1910년까지로 정한 것은 의거 후 당시 일본에서의 안중근 의거에 대해서 어떻게 인식했는지에 대한 상황을 살펴보고자 함도 있으며, 이 시기가 일제강점기 전 일본이 무단정책을 실시한 시기였음으로 일본인들이 한국인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는 시기라는 점도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이러한 본고 「안중근 의거, 아사히・요미우리・마이니치 신문을 통해 -1909년부터 1910년까지-」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첫째, 1909년부터 1910년대까지, 즉 일제강점기 중 한국인에 대한 탄압이 심했던 시기에 안중근 의사에 대한 일본인들의 인식이 어떠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지를 살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둘째, 실증적이고 구체적인 자료를 통해 일제강점기 당시의 안중근 의사에 대한 일본인의 인식을 파악할 수 있고, 일본인들의 의식에 대한 접근 및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다. 셋째, 1909년부터 1910년대, 당시 안중근 의거에 대한 정보, 예를 들어 안중근 의사에 대한 기본 정보, 이토 히로부미에 대한 상황, 의거 장소, 의거 시간 등 가장 기초적인 정보들이 일본 내 일본인들에게 어떻게 전달되었는지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일본 정부의 정책, 목적 내용의 변천을 파악하는 데 필요한 연구이다. 이는 당시 일본제국주의의 실상이나 일본인 의식에 관한 객관적 자료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며, 이러한 자료는 일본의 정책과 여론 등의 파생 연구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다섯째, 정치적 이유로 한일관계는 악화 일로에 서있다. 그러나 한국인, 일본인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공감을 갖게 된다면, 동아시아의 평화를 원하셨던 안중근 의사의 뜻을 이어나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Abstract

An Jung-geun was a Korean independence activist, nationalist. On October 26, 1909, he assassinated Itō Hirobumi, a four-time Prime Minister of Japan and former Resident-General of Korea, following the signing of the Eulsa Treaty, with Korea on the verge of annexation by Japan. Ahn was posthumously awarded the Order of Merit for National Foundation in 1962 by the South Korean government, the most prestigious civil decoration in the Republic of Korea, for his efforts for Korean independence. In this study, 『Japaneseʼ Cognition of Ahn Jung-Geun-Focusing on The Asahi Shimbun, The Yomiuri Shimbun, The Mainichi Shimbun, From 1909 to 1910』 is the following meaning. The First, Korea under Japanese rule(from 1909 to 1910), it will serve as an opportunity for the Japanese people to recognize the direction of Ahn Jung-geun. The Second, Korea under Japanese rule(from 1909 to 1910), It will also be able to understand the patriotic deed of An Jung-geun were conveyed to the Japanese. The Third, it can present objective data on Japanese imperialism and Japanese consciousness, and can be helpful in deriving Japanese policies and public opinion.

참고문헌 (8)

  1. 石川啄木, "『啄木全集』第5巻", pp.11~ (1949), 河出書房
  2. "朝日新聞", ~ (1910)
  3. "読売新聞", ~ (1910)
  4. "每日新聞", ~ (1910)
  5. 권상균, "안중근에 대한 주변 국가들의 이해 : 일본인들의 평가를 중심으로", 석사, 역사신학전공, pp.2013
  6. 김미옥, "안중근 의거에 대한 일본인의 인식- 1909년부터 1910년까지 아사히신문(朝日新聞)을 중심으로 -", 일어일문학연구, 103(2), pp.219~238 (2017), 한국일어일문학회[DOI]
  7. 이상일, "안중근의거에 대한 각국의 동향과 신문논조", 한국민족운동사연구, 30, pp.95~117 (2002), 한국민족운동사학회
  8. 윤소영, "일본 신문자료를 통해 본 3ㆍ1운동 -오사카 아사히 신문과 오사카 마이니치신문을 중심으로-", 유관순연구, (20), pp.169~ (2015), 백석대학교 유관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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