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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7~668년 당의 공격과 고구려의 대응 ‑압록강 전선의 전투 양상을 중심으로‑

Tang’s attack and Goguryeo’s response from 667 to 668 ‑Focusing on the battlefront along the Yalu Ri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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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개소문 사후 일어난 내분 끝에 남생은 당에 항복했다. 남생과 함께 항복한 여러 성 중에는 요동과 국내성 을 잇는 교통로 상에 위치한 성들도 포함되어 있어 고구려의 방어 전략에 큰 타격을 주었다. 이를 기회로 삼은 당이 667년 2월 新城을 공격하면서 3차 고당 전쟁이 시작되었다. 7개월간의 사투 끝에 당은 신성을 함락시켰 다. 고구려는 신성을 탈환하기 위해 군를 파견했으나 金山 전투에서 패배하다. 남생의 항복를 계기로 당에 넘어간 성들 때문에 요동 방어체계가 약화되어 고구려는 효과적인 방어를 하지 못했다. 이후 당은 압록강을 넘 어 평양으로 진군하고자 했으나 압록강 하류의 고구려 방어체계가 굳건하여 강을 넘지 못하고 겨울을 맞이했 다. 당이 국내성에서 겨울을 날 수 있게 되자, 지구전을 통해 적이 스스로 돌아가는 것을 목표로 삼았던 고구려 의 방어전략이 차질을 빚었다. 668년 2월에 당이 扶餘城을 공략하면서 전쟁이 재개되었다. 고구려는 부여성마 저 당이 장악할 경우 고구려 역이 압록강 이남과 이북으로 양분될 것을 우려하여 부여성을 구원하기 위해 압 록강 하류의 방어 병력을 파견했다. 고구려의 구원군은 부여성 공략 후 남진하던 李勣의 당군과 맞닥뜨리게 되 어 지금의 靉河 부근 薛賀水에서 전투를 벌다. 설하수 전투에서 당은 승을 거두었고, 이후 계속해서 大行 城을 공격하여 압록강을 건널 수 있는 교두보를 확보하다. 이에 고구려는 압록강 남변에 위치한 鴨綠柵을 활 용하여 당의 도하를 저지하다. 이후 당은 남쪽에 위치한 신라의 고구려 남방 공격을 유도하여 고구려 수비 병력을 분산시키는 전략을 구사하고, 이 결과 압록책을 넘어 고구려를 공격할 수 있었다. 압록책 방어가 뚫린 이후 고구려군이 급격하게 붕괴되었고, 당은 이를 틈타 평양성으로 진출하여 고구려를 멸망시킬 수 있었다.

Abstract

After an internal strife following the death of Yeon-Gaesomun(淵蓋蘇文), Namsaeng(男生) surrendered to Tang(唐). Among the castles that surrendered along with Namsaeng were the castles located on a transportation route linking Liaodong(遼東) and Guk-naeseong(國內城), a major blow to Goguryeo’s defense strategy. Taking this opportunity, the war began when Tang attacked the Sinseong(新城) in February 667. After seven months of struggle, Tang took the fall of Shinseong. Goguryeo sent an army to retake the Shinsung, but it failed to do so, losing at the Battle of Gumsan(金山). Due to the weakening of its Liaodong defense system bcuz of the fotresses passed over to the Tang in the aftermath of the Namsaeng surrender, Goguryeo was unable to effectively defend itself. Tang attempted to advance over the Yalu River(鴨綠江) to Pyongyang(平壤), but its defense system in the downstream of the Yalu River remained, failed to cross the river and facing winter. As the Tang was able to spend winter in Guk-naeseong, it dealt a great blow to the Goguryeo military’s defense strategy, which aimed to allow the enemy to return on its own through attrition warfare. In February 668, the war started again when Tang attacked Buyeoseong(扶餘城). Goguryeo dispatched defense forces downstream from the Yalu River, fearing that if Tang took control of Buyeoseong, the Goguryeo domain south and north of the Yalu River would be cut off. Goguryeo’s Redemption Army encountered the troops of Yi Jeok(李勣)’, which was advancing south after attacking Buyeoseong, and fought in Seolhasu(薛賀水) what is now near Aeha(靉河). At the Battle of Seolhasu, the Tang won a great victory, and as it attacked Daehaengseong(大行城), where its defense was weakened in the aftermath of the Battle of Seolhasu, Tang was able to prepare a bridgehead to cross the Yalu River. In response, Goguryeo erected a Yaluchaek(鴨綠柵) on the southern side of the Yalu River to block Tang’s cross the river. Tang induced Silla(新羅) southern attack on Goguryeo to disperse Goguryeo’s defense capabilities, and it was successful, they can overcome the Yalu River. Because of the Yalu River policy was collapsed, it became Goguryeo military’s psychological resistance ability is also collapsed, with a series of surrenderers, and Tang advanced to Pyongyang and destroyed Gogury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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