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와로 본 6세기 동해안 연안 지역 일대의 고구려 지역 거점과 상실
The Base Area and Loss of Goguryeo in the East Coast Area of the 6th Century Based on the Front-roof Tiles
0
조회
0
다운로드
0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동해안 연안 지역 일를 둘러싼 고구려와 신라의 영역화 양상은 문헌기록을 통해서 어느 정도 유추가 가능 하다. 이를 뒷받침하듯이 신라의 유물과 유적이 이 일에서 발견되고 있어서, 당시 신라의 지역 거점 및 운영 에 한 이해를 높일 수 있다. 하지만 다수의 고고학 관련 자료가 발견되는 신라에 비해 고구려의 동해안 연안 일에 관한 존재를 실증할 수 있는 자료는 많지 않은 실정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고고학 상에서 동해안 연안 지역 일에 한 고구려의 운영은 공백에 가깝게 취급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 연구는 함경남도의 신하리 유적과 강원도의 강릉읍성에서 출토된 고고자료, 특히 고구려의 수막새를 통 해 동해안 연안 지역 일의 고구려 지역 거점과 통제 방식 및 신라와의 긴장 관계를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 것이다. 지금까지 문헌자료와 신라의 물질문화를 중심으로 동해안 연안 일를 둘러싼 고구려와 신라의 양 상을 파악하고자 한 기존의 연구들과는 달리, 고구려의 수막새로 판단이 가능한 실물자료 및 이러한 유물이 출 토된 유적지가 가지는 의미를 중심으로 고구려의 실재(實在)와 동해안 연안 지역 일에 관한 동향을 살펴보 았다. 삼국시의 기와는 국가 권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유물로서, 그 제작시기와 출토지를 통해 국가 영역 의 범위나 지역통치의 양상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 이러한 의미를 가지는 고구려의 기와가 현 시 점에서 명확하게 확인되는 동해안 연안 지역 일의 유적은 신하리 유적과 강릉읍성뿐이다. 본 연구에서 출토된 고구려 수막새를 검토한 결과, 신하리 유적과 강릉읍성에서 출토된 수막새들은 6세기 2/4기에 제작된 것들이다. 이와 같은 고고학 자료의 연관 및 유적의 양상을 고려해 볼 때, 해당 시기에 고구 려는 이 지역들을 거점으로 삼아 동해안 연안 지역 일를 직접지배하고 있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또한 동해안 연안 일를 둘러싼 고구려와 신라의 국경은 고착된 것이 아니라, 6세기까지도 힘의 논리에 의해 유동적이었던 것으로 유추가 가능하다. 본 연구를 통해 지방의 고구려 기와에 한 이해뿐만이 아니라 동해안 연안 일에서 의 고구려 지역 거점의 양상 및 고구려와 신라의 긴장 관계를 한층 더 충실히 할 수 있을 것으로 기한다.
Abstract
The territorialization of Goguryeo and Silla surrounding the East Coast region can be speculated to some extent through literature records. As evidenced by this, Silla’s relics and relics are discovered in the East Coast area, so it is possible to understand the local bases and operations of Silla at that time. However, there is little evidence to demonstrate Goguryeo’s existence in the East Coast area, compared to Silla, where many archaeological data are found. For this reason, it was difficult to grasp the reality of Goguryeo’s operation in the East Coast region in archaeology.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archaeological materials excavated from Sinha-ri ruins in Hamgyeongnam-do and Gangneung-eupseong in Gangwon-do, especially the Goguryeo regional bases and control methods in the East Coast area through the front-roof tiles of Goguryeo, and the tension with Silla. This study is different from previous studies that have tried to understand the aspects of Goguryeo and Silla surrounding the East Coast area, focusing on literature data and Silla’s archaeological data. Focusing on the meaning of the actual data and relics that can be judged by Goguryeo’s front-roof tiles, the trend of Goguryeo’s reality and the East Coast coastal area was examined. The tile of the Three Kingdoms period is a relic closely related to the power of the state, and it is important because it is possible to confirm the territory of the state and the governance of the region through the time when it was made and the excavated area. The only remains in the East Coast area where the roof tiles of Goguryeo, which have this meaning, are clearly identified are the remains of Sinha-ri and Gangneung-eupseong. The front-roof tiles excavated from Sinha-ri ruins and Gangneung-eupseong Fortress handled in this study were produced in the 2nd quarter of the 6th century. Considering the age of archaeological data and the aspects of the ruins, it is believed that Goguryeo directly controlled the East Coast coastal area based on these areas during this period. And it is presumed that the border between Goguryeo and Silla surrounding the East Coast area was not fixed, but was fluid by the logic of power until the 6th century. Through this study, it is expected that the understanding of Goguryeo’s roof tiles produced in the region, the aspect of Goguryeo’s regional bases in the East Coast area, and the tension between Goguryeo and Silla can be further enhanced.
참고문헌 (30)
- "三國史記", ~
- "舊唐書", ~
- 양양 포월리 주거지, "강릉대학교박물관", ~ (2002)
- 양양 후포매리 고분유적, "강원고고문화연구원", ~ (2020)
- 강릉읍성 ‑ 강릉 문화도시 조성사업부지내 유적발굴조사 보고서-, "강릉시", ~ (2016)
- 홍련봉1보루, "고려대학교고고환경연구소", ~ (2007)
- 아차산성 ‑ 남벽 및 배수구 ‑, "고려대학교고고환경연구소", ~ (2020)
- 강릉 강문동 신라 토성, "국강고고학연구소", ~ (2015)
- 대성산의 고구려 유적, "김일성종합대학", ~ (1973)
- 동명왕릉과 그 부근의 고구려 유적, "김일성종합대학", ~ (1976)
- 파주 덕진산성, "중부고고학연구소", ~ (2014)
- 朝鮮瓦塼圖譜 Ⅱ‑ 高句麗‑, "井內功", ~ (1976)
- 昭和十二年度古蹟調査報告, "朝鮮古蹟硏究會", ~ (1938)
- 朝鮮古蹟圖譜 二, "朝鮮總督府", ~ (1915)
- 高句麗時代之遺蹟 上, "朝鮮總督府", ~ (1929)
- 강봉룡, "5세기 이전 신라의 동해안방면 진출과 ‘東海岸路’", 한국고대사연구, (63) (2011)
- "함주군 신하리 집자리 유적 발굴보고(1)", 조선고고연구, 1 (2007)
- "함주군 신하리 집자리 유적 발굴보고(2)", 조선고고연구, 2 (2007)
- 신광철, "고구려의 강원도 진출과 의의", 한국상고사학보, 88 (2015)
- 심현용, "고고자료로 본 신라의 강릉지역 진출과 루트", 대구사학, 94 (2009)
- 이도학, "고구려의 동해 및 동해안로 지배를 둘러싼 제문제", 고구려발해연구, 44 (2012)
- 이창현, "강릉지역의 신라화 과정 ‑ 고분자료(古墳資料)를 중심으로 ‑", 문화사학, (25) (2003)
- 이한상, "동해안지역의 5~6세기대 신라분묘 확산양상", 영남고고학, 32 (2003)
- 장창은, "4~5세기 고구려의 남방진출과 대신라 관계", 고구려발해연구, 44 (2012)
- 전덕재, "신라의 동북지방 국경과 그 변천에 관한 고찰", 군사, (91) (2014)
- 주홍규, "고구려 기와의 분류와 특징에 관한 일고찰", 선사와고대, (41) (2014)
- 주홍규, "고구려 기와로 본 경신리 1호분(소위 「한왕묘」)의 조영연대와 피장자 검토", 한국사학보, (68) (2017)
- 주홍규, "고구려의 왕릉 조영 인식에 관한 연구 ‑ 집안(集安)지역 소재 고구려 왕릉을 중심으로 ‑", 민족문화논총, (80) (2022)
- 홍영호, "신라의 동해안 연안항해와 하슬라 ‑ 강릉 경포호 강문동 신라토성을 중심으로 ‑", 백산학보, (95) (2013)
- 朱洪奎, "高句麗軒丸瓦の変遷に関する基礎的検討‑ 紋様及び製作技法における諸特徴の分析から‑", 考古學雜志, 102(2) (20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