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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일보・매일신보 사장 시절(1914.8-1918.6)의 아베 미쓰이에(阿部充家)

Abe Mitsuie's Presidency of Kyungsung Ilbo and Maeil Shinbo(August 1914-June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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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1914년 8월 아베는 요시노 다자에몬의 후임으로 4대 경성일보 사장에 취임했다. 조선총독부의 요시노 사장에 대한 불만이 팽배해지자 조선총독부와의 의사소통을 강화하고자 도쿠토미는 국민신문에서 가장 신뢰한 인물이자 총독과 경무총장들과 친분이 있었던 아베를 후임 사장으로 발탁하였다. 그러나 취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요시노 사장 시절의 방만경영과 재정적자가 총독부에 발각되었다. 조선총독부는 경성일보, 매일신보에 대한 본격적인 개혁을 검토하고 도쿠토미로 하여금 개혁안을 제출하게 하였다. 1915년 3월 완성된 개혁안은 데라우치 총독이 추천한 아베 쓰루노스케 주간 주도하에 진행되었고, 총독부의 긴축재정방침이 반영된 것이었다. 이로 인해 아베는 경성일보 경영에서는 조선총독, 고문(총무국장), 경무총장(검열), 감독(도쿠토미), 주간(아베 쓰루노스케:재무담당)이라는 조선총독부와 국민신문 간부의 중층적인 관리체제 하에서 많은 제약과 간섭을 받아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다. 반면에 아베는 매일신보 경영에서는 최남선, 이광수, 진학문, 심우섭 등과 같은 유학생 출신 ‘신지식인층’을 발탁, 등용해서 지면을 쇄신하고 지방기사를 늘리는 등 다각적인 ‘경영혁신’을 통해서 매일신보의 판매부수를 늘릴 수 있었다. 반대로 이들 신진 ‘문학 청년’들은 아베를 통해서 1910년대 최대의 대중매체인 매일신보라는 활약무대에 설 수 있었다. 1910년대 아베와 ‘신지식인층’ 사이의 이러한 ‘밀월관계’, ‘접근’은 1920년대 문화통치에서 식민지권력과 피통치자(특히 민족주의세력) 사이에 전개되는 비대칭적이면서도 불균등한 ‘접근전’・‘바게닝’ (bargaining)의 기본적인 토양이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아베는 ‘접근전’・‘바게닝’을 매개하는 ‘제국의 브로커’, ‘비정식접촉자’로서 조선에서 비로소 그 존재감을 점차 높여가게 된다. 즉 조선은 아베에게 도쿠토미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의 독자적인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무대가 되었던 것이다.

Abstract

In August, 1914, Abe was appointed as the 4th president of Kyungsung Ilbo as Yosino Dajaemon's successor. As the Japanese Government General of Korea's dissatisfaction with president Yosino increased, Tokutomi selected Abe as the incoming president, who had been most trusted by National Newspaper and acquainted with the governor and presidents of police affairs, in order to reinforce communication with the Japanese Government General of Korea. However, soon after his inauguration, the reckless management and financial loss during president Yosino's days were discovered by the Japanese Government General. Japanese Government General of Korea considered reformation of Kyungsung Ilbo and Maeil Shinbo in a full-scale, and made Tokutomi submit a reform bill. The reformation proposal completed in March, 1915, was proceeded with the lead by an editor-in-chief, Abe Tsurunosuke, recommended by governor Terauchi, and the Japanese Government General's policy of fiscal austerity was reflected. Because of which, regarding Abe's management of Kyungsung Ilbo, he couldn't use his abilities fully because of a lot of restrict and interference under the multi-level management system by the Japanese Government General of Korea and executives of National Newspaper including the Japanese Governor of Korea, advisor(a director of general affairs bureau), presidents of police affairs(censorship), a supervisor (Tokutoki), and an editor-in-chief(Abe Tsurunosuke: in charge of finance). On the other hand, as for Abe's management of Maeil Shinbo, he succeeded in increasing its daily circulation through multiple 'management innovation' by selecting and appointing 'new intellectuals' with the experiences of studying abroad, such as Choi Nam-seon, Lee Gwang-su, Jin Hak-mun, and Shim Woo-seop, renovating spaces on paper, increasing local articles, and so on. In other words, these rising ‘young lovers of literature’ could appear on the stage of Maeil Shinbo, the biggest mass media in 1910s, through Abe. This ‘cozy relationship’ and ‘approach’ between Abe and 'new intellectuals' in 1910s can be said to have been the foundation for the asymmetric and inequal 'infighting' and bargaining developed between the colonial power and the governed(particularly the nationalist group) during the cultural rule in 192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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