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세기 중엽 고구려와 신라의 통호와 7세기 전반까지 양국의 상호 인식
The intimacy between Goguryeo and Silla in the the mid-6th century and the mutual cognition by the first half of the 7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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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고구려는 6세기 중엽 신라와 통호를 맺음으로써 나제동맹을 결렬시키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동맹국으로써 백제에 대해 점차 회의를 갖게 된 신라도 고구려와의 통호를 통하여 한강 하류 유역을 차지하는 등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양국의 통호는 고구려와 신라의 인식 차이로 인해 깨질 수밖에 없는 태생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평원왕대를 거치면서 국력을 회복한 고구려는 6세기 말 신라 공격을 개시하였고, 이로 인해 통호는 사실상 파기되었다. 그러나 백제와 원수 관계였던 신라는 고구려와의 연결 고리를 유지할 필요가 있었고, 고구려가 통호를 먼저 파기했기 때문에 대외적인 명분도 자국이 앞설 것으로 여겼다. 이러한 인식은 640년대 초까지 계속되었는데, 642년 백제에게 대야성을 빼앗긴 이후 김춘추가 고구려에 청병하러 간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였다. 이처럼 신라는 고구려와의 관계 개선에 희망을 가지고 있었지만, 고구려는 이미 신라에 대한 군사적 압박을 결정지은 상태였으며, 이는 연개소문의 정변 이후 확고해졌다. 자연히 김춘추의 청병은 거부되었고, 양국의 더 이상 접근할 여지가 없었다. 결국 신라는 고구려에 대한 희망을 버리고 당에 접근하게 되었다.
Abstract
Goguryeo was able to break the Naje alliance by contracting intimacy with Silla in the middle of the 6th century. Silla was gradually skeptical about military force of Baekje, so Silla contracted intimacy with Goguryeo. And Silla also occupied the downstream basin of the Han River, and killed King Sung of Baekje. However, the intimacy of both countries was destined to be broken due to the limitations of the birth, especially the perception of the Goguryeo side. At the end of the 6th century, Goguryeo recovered its national power and began to attack Silla. However, Silla, who had a relationship with Baekje, needed to maintain a link with Goguryeo. As long as Goguryeo destroyed Goguryeo first, he thought that his country would precede the foreign cause. This perception continued until the early 640s, when Kim Chun-chu went to visit Goguryeo after Baekje deprived Daeyasung in 642, which is a representative example. Thus, while Silla had hoped to improve relations with Goguryeo, Goguryeo, who had been attacked by Silla at the time of the war in the early 7th century, had already determined military response to Silla. Naturally, Silla's servitude was forced to be rejected, and only the recognition of the two countries was confirmed. In addition, since the invasion of Silla by Goguryeo became more severe after the control of the Gyeongnyeongsa, Silla finally abandoned the hope for Goguryeo and approached the par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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