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언양 鄕班 가문의 사회 지위 유지와 그 양상 - 삼동면 보은리 丹陽 禹氏 가문의 사례연구 -
The Local Elite Society Status Maintenance and the Aspect of Unyang County in late Choson Dynasty - A Case Study of Danyang Woo Family of Bounri Samdongmyeon -
0
조회
0
다운로드
3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이 연구는 조선후기 지방의 어느 가문이 양반이라는 상징권력을 확보하고 유지하는 일련의 노력을 고문서 자료 등을 통하여 밝힘으로써 향반사회의 다양한 층위와 변화의 의미를 포착하는 데 있다. 삼동면 보은리에 거주한 단양 우씨 가문은 통칭 언양의 8대 성씨로 일컫는 언양을 대표하는 가문들보다 위세는 낮았으나 이들과 마찬가지로 언양의 향반 사회를 구성하고 있었다. 이렇듯 이 연구는 향반사회를 끌어가는 유력한 가문들 외에도 향반사회를 구성하는 또 다른 다양한 향반 가문들을 주목함으로써 조선후기 향반 가문의 다양한 층위와 그 의미를 밝히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단양 우씨 가문은 언양을 대표하는 8대 성씨들보다 늦은 18세기 중반에 언양 보은리에 정착하였다. 관직 진출을 사실상 기대할 수 없는 사회 환경 속에서 정착 이후 이 가문은 점차 언양의 공적 의례에 참여하고 언양의 관청 및 향반사회와의 관계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사회적 위상을 부각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19세기에 들어서는 서원과 향교의 임원을 맡으면서 面任을 거쳐 座首까지 맡기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면의 분할 및 재정 운영 등 공적 영역에서 공론을 적극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역할도 맡았다. 이렇듯 향반으로서 사회적 위상을 확보하는 과정은 문화적으로 자신들의 미덕을 드러내는 행위로 이어졌다. 효자 정려를 받기 위한 50년에 걸친 노력이 이것이다. 이 유교의 실천 행위는 19세기 중반부터 후반까지 이어졌는데 이 사업에는 언양의 유력 향반들도 모두 동원되었다. 효자정려의 추증은 단양 우씨 가문이 사회적 위상을 확보하여 가는 중요한 문화적 전략인데, 대체로 뒤늦게 입향한 향반들의 노력은 매우 적극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이 같은 논의를 통하여 이 연구는 향반사회가 다양한 층위를 가진 부류들과 동질적인 상징권력을 계속 공유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사회적 위상을 확보하고 계속 유지하였음을 밝힐 수 있었다.
Abstract
This study is to discern the various stratums and change's meaning of the local elite in later Choson dynasty. This work is carried out through the old document materials, and focused on the efforts on the family of local elite to attain and maintain the symbolic power as elite. Danyang Woo Family dwells in Bounri Samdongmyeon, and their power is not far over than the another eight group's representing Unyang elite family. But they are also the member of the local elite society in Unyang. This work interested in the various local elite family in addition to the powerful family composing the local society, and reveals that there are many stratums and meaning of local family in later Choson Dynasty. Danyang Woo Family are located in Unyang Bounri, its appearance is rather later than the eight group's representing Unyang elite family. It is impossible for this family to attain the official position. In this social condition, Woo family takes a strategy to strength the relationship the local elite and the Office of Unyang to participate into the public rituals. So they can gradually achieve the social position. They takes many position, including public county school of private academy, Myeonim(面任) and Jwasu (overseer, 座首). In this process they takes part to lead the public opinion including the divide of the Myeon(面) and the financial management. As above mentioned, this family does the action culturally to expose the virtue of their family in the process attaining the social position as local elite. This action resulted in the efforts of 50 years to receive the devoted son and Monument House from the government. Its efforts go on to 19c middle and later, and mobilizing all of the powerful elite family in Unyang. To receive the devoted son and Monument House is a kind of Cultural strategy and it is important in attaining the social position, and especially later appeared local elites do their best. In the end, we can find the facts that the local elite of local society shares the symbolic power with many another elites and Woo family is to achieve and maintain their social position in this process.
참고문헌 (27)
- 釜山大學校韓國文化硏究所, "慶尙道彦陽縣戶籍大帳上․下" (1983), 영인
- 황오동, "慶尙道彦陽縣戶籍大帳", ~
- "丹陽禹氏族譜, 울산시 언양읍 보은리, 우영구 소장, 간행본, 연대미상", ~
- "彦陽邑誌, 울산시 언양읍 지내리, 성봉선 소장", ~ (1919)
- "울산시 언양읍 보은리 우영구 소장 古文書類", ~
- 삼남면지편찬위원회, "三南面誌" (2002), 삼남면지편찬위원회
- 삼동면지편찬위원회, "彦陽邑誌", ~ (2001)
- 언양읍지편찬위원회, "三洞面誌", ~ (2002)
- 언양향교지편찬위원회, "彦陽鄕校志", ~ (2006)
- 고석규, "19세기 전반 향촌사회 지배구조의 성격-‘수령-이․향 수탈구조를 중심으로", 외대사학, 2 (1989), 한국외국어대사학연구소
- 김석희, "조선후기 지방사회사 연구" (2003), 혜안
- 김용민, "19세기 면의 운영층 강화와 면임의 역할", 한국사학보, 3․4 (1998), 고려사학회
- 김인걸, "변태섭박사화갑기념사학논총" (1985), 삼영사
- 김준형, "18세기 里定法의 전개−촌락의 기능강화와 관련하여", 진단학보, 58 (1984), 진단학회
- 김혁, "19세기 김채상 집안의 효자정려 취득과정", 장서각, 12 (2004), 한국학중앙연구원
- 김현영, "조선후기의 재지 사족의 정치적 성장과 '전통의 창출'-大丘月村丹陽禹氏의 養浩堂顯揚事業을 중심으로-", 사학연구, (68), pp.71~98 (2002), 한국사학회
- 남연숙, "朝鮮後期鄕班의 居住地移動과 社會地位의 持續性-彦陽못안골 昌寧成氏家門을 中心으로", 韓國史硏究, 83·84 (1993), 한국사연구회
- 민선희, "朝鮮後期東萊地域의 엘리트와 天主敎受 容者들, 그리고 이에 관한 古文書" (1995), 釜山敎會史硏究所
- 박정숙, "朝鮮後期 政治變動에 따른 鄕班의 生存戰略- 彦陽 靈山 辛氏 家門의 事例 -", 대구사학, 88, pp.1~32 (2007), 대구사학회
- 박주, "조선시대의 정표정책" (1990), 일조각
- 손숙경, "조선후기 언양 하잠리의 영산 신씨 향반 가문과 이들의 고문서" (2014), 동아대 석당학술원 한국학연구소
- 오영교, "17세기 향촌대책과 면리제의 운영", 동방학지, 85 (1994),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 이훈상, "朝鮮後期彦陽의 昌寧成氏家門과 天主敎受容者들그리고 이에 관한 古文書" (1999), 釜山敎會史硏究所
- 이희환, "조선말기의 정려와 가문숭상의 풍조", 조선시대사학보, 17 (2001), 조선시대사학회
- 임선빈, "조선시대 사회의 모습" (2003), 집문당
- 정진영, "예안 역동서원의 연구", 안동문화연구, 3 (1989), 안동문화연구회
- 정진영, "1894년 농민전쟁 연구 1" (1990), 역사비평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