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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경상도 監營의 營房과 安東의 향리사회-안동 향리사회의 영방 주도권 유지 전략과 향리 가계들의 상호 견제 기제

A Study on the Andong Fuctionaries’ Society and Their Hegemony on the Chamber of Functionaries within the Headquarter of Gyeongsang Provincial Governor in Late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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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초록

이 연구는 조선후기 이후 감영 영방을 특정 지역의 향리사회가 주도하는 변화와 그 의의를 경상도를 사례로 밝힌 것이다. 이미 선행 연구를 통하여 조선후기 이후 경상도 감영의 영방을 안동 향리들이 장악한 사실은 밝혀졌는데, 이를 기초로 이 연구에서는 영방과 안동의 향리 사회와의 상관성을 논의하였다. 그리하여 이 연구는 먼저 영리들 중 일부를 선별하여 수록한 嶺營房先生案이 처음 편찬된 배경과 그 구도에 주목하였다. 그리하여 영방선생안은 17세기 전반 안동 향리들의 영방 장악에 대응하여 각 지역 출신들을 돌아가며 영방에 차정된 과거를 재현하려는 구도 아래 편찬되었음을 밝혔다. 이어 영방선생안의 내용 및 형식 변화를 안동 향리들이 영방을 장악하고 이어 헤게모니를 확립하는 과정과 연관 지어 논의하였다.안동 향리들의 영방에 대한 헤게모니가 어떻게 장기간 유지되었는가가 이 연구의 초점인데, 그 구조화를 위한 전략과 기반을 외부와 내부로 나누어 접근하였다. 전자에 있어서는 각 읍의 향리 사회에 대한 차별화된 호혜 전략을, 후자에 있어서는 안동 향리 사회 자체에 있어서 새로운 변동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촉진된 재조직화에 주목하고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권력의 역학 관계도 밝히려 하였다. 이를 위하여 경상도 영방을 주도한 영리 489명과 안동의 읍권을 주도한 이방과 호장 386명과 이들의 출신 가계를 분석하였는데, 그 결과 안동 이족 가계들의 분화와 이에 따른 상호 견제 기제의 형성을 다양한 차원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더불어 읍권보다는 상위 차원의 권력의 장이 영방을 중심으로 생성되면서 상당 수준의 자율성을 획득한 사실도 주목하였다.마지막으로는 18세기 후반 이후 중앙정부의 정치 전략과 연동하여 특정 가계들이 영방에서 약진한 사실에 주목하였다. 그리고 이들의 우위를 굳히기 위한 기획과 이에 대응하는 나머지 가계들과의 대립 구도에 대하여 논의하였다. 그리하여 이족 가계들 사이의 권력의 역학 관계가 대립 구도로부터 타협과 중재로 발전하는 과정을 밝히고 여기에 작용하는 견제 기제와 이것을 뒷받침할 수 있었던 권위나 권력을 논의하였다.이상과 같은 논의를 통하여 17세기를 사회 변동의 중요한 분수령의 하나로서 설정하여야 함을 제기하였다. 이어 이에 따른 새로운 권력의 장의 생성은 왕조 체제의 해체의 전조가 아닌 오히려 완충 기제의 형성으로 보아야 한다고 논의하였다.

Abstract

This study is focused on the management mode and the construction change of Gamyong’s chamber of clerks who were in charge of administration of Kyungsang province in the late Joseon Dynasty. In the process, the mechanism will be clarified which maintained Andong Hyangli’s long-termed hegemony. This paper presupposes that in the late Joseon provincial administrative systems, Gamyoung’s function and portion increased and thus chamber of clerks's influencial power also increased. To prove this presupposition, this study explored new raw materials and constructed database that can show the power relations of chamber of Gamyong clerks and Andong Hyangli. 489 of younglis who ascended to high rank in the chamber of clerks and 386 of Andong Hyangli in the high position are analyzed in this study. The research of this paper arrived at the following conclusions: First, Andong Hyangli after the 17th century monopolized chamber of Gamyong clerks and hence after tried to build systematic support to solidify their power. Secondly, Youngli roster made in the earlier 17th century, although it was a resistance against the monopoly of Andong chamber of clerks, could not change the reality. Thirdly, Andong hyangli's monopoly of chamber of clerks and their hegemony in the late Joseon was supported by the compromise and distribution of positions among hyanglis from different areas. Furthermore, Andong hyangli attempted to eacape criticism against themselves through solidarity with neighboring hyanglis. Forthly, Andong Hyanglis maintained their inner solidarity through initiation ceremony, which was regarded as indispensible to maintain their hegemony. Fifthly, Andong's important lineages of local clerks monopolized the important positions of chambers of clerks in Andong. However, appropriate distributiion of position among the members lessened the inner conflicts and thereby strengthened the foundation of their social posi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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