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ERD
논문KCI 등재

19세기 후반 식민지기 관우 숭배의 확산과 쇠퇴

he Propagation and Decline of Worship for GwanWoo(關羽) from the late 19th Century to the Colonial Period

0

조회

0

다운로드

5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주제분류기타인문학

초록

이 연구는 19세기 후반 이후 급격하게 확산된 관우 숭배가 한말 식민지기를 거치면서 쇠퇴해가는 현상에 주목하여 그 변화와 의미를 살펴보았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들어온 관우 신앙은 19세기 후반 고종 연간에 그 열기가 고조되어 크게 확산되었다. 국가 의례로서 국가의 주도 아래 거행되었던 관우 의례는 식민지기 민간신앙으로 지속되다가 급속히 사라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한말 식민지기 관우 신앙이 더 이상 국가의 비호를 받지 못하게 되자, 단순히 의례를 후원하는 관우숭배단체들이 관성교라는 종교조직을 만들어 관우 의례를 주관하게 된 것과 연관된다. 한편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국제질서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거치면서 중국을 배경으로 한 역사적 문화적 상징이 더 이상 호소력을 갖기 어려웠다. 대신 내셔널리즘에 기초한 민족 종교들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빠른 시간 안에 공공 의례의 또 다른 중심축으로까지 부상했던 관우 숭배는 한말에 이미 엘리트들의 희구를 뒷받침하는 새로운 구심점의 자리에서 밀려났다. 이렇듯 관우 숭배는 강력한 후원자를 상실하면서 기독교 등 서구에서 수용한 종교들과의 경쟁에서도 더 이상 지지 기반을 유지할 수 없었다. 더하여 관우 숭배를 바라보는 근대적 시선도 식민지기의 운명을 좌우한 현상이다. 각종 대중 매체, 특히 언론은 관우 신앙을 미신적인 것으로 간주하여 비판하였다. 식민지기 지식인들도 마찬가지로 1930년대 일본의 미신타파정책과 궤를 같이하여 민간신앙과 흡수되어 있는 관우 신앙을 미신적인 것으로 간주하였고, 사대주의의 산물로 인식하였다. 특히 기독교인들은 관우 신앙을 미신적인 것으로 타파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고, 근대로 가는 데 있어 배척해야 할 문화적 유산으로 인식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에 의한 미신타파는 단순히 종교상의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근대화로 가는 첫 길목으로 여긴 것이다. 이러한 사회 환경의 변화와 관우 신앙에 대한 시선들은 관우 신앙이 사라지는 배경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Abstract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change and its meaning of the worship of GwanWoo, focusing to the decline during the colonial period. Since the worship of GwanWoo was introduced when Japanese invasions of Korea broke out, it had been widely spread and reached its height during the reign of King Gojong. Although the ritual of the worship of GwanWoo tended to governed as state ritual, it disappeared rapidly after it was considered as folk religion for a while. This was related to the fact many organizations dedicated exclusively to GwanWoo, which were only sponsoring bodies, took the lead at the ceremony, forming the religious organization, Gwan-sung Taoism, because of the absence of the formal protection of Joseon dynasty during the colonial period. Meanwhile, china's power to influence other nations in east asia became slight as historical and cultural symbols through the Sino-Japanese War and the Russo-Japanese War. Indigenous religions based on nationalism began to be diffused instead. Whereupon the worship of GwanWoo already lost its place to support elite groups around the end of dynasty in spite of its diffusion and decisive roles in public rituals. The worship of GwanWoo couldn't maintain the bedrock of its support against the new religions from western nations such as Christianity after failing to keep its sponsors satisfied. Moreover, modern perspectives on the worship of GwanWoo was directly concerned in a direction of colonial Korea. Mass media, especially news media strongly criticized the worship of GwanWoo regarding the belief as a superstition. Many intellectuals of Japanese colonial period also considered the worship as superstitious religion and by-product of toadyism because it integrated into folk religion relating to the policy of disruption of superstition occurred in Japan in the 1930's. Christians believed that because the belief of GwanWoo was a superstitious thing, it must be disrupted and firmly excluded for modern society. Therefore the disruption of superstition conducted by Christianity was important as not only the matter of religion but also the way for modernization. This change in the social environment made the belief of GwanWoo unsustainable much longer. And these perceptions contributed to the decline of the belief of GwanWoo as a background.

참고문헌 (46)

  1. "조선왕조실록", ~
  2. "승정원일기", ~
  3. "매일신보", ~
  4. "동아일보", ~
  5. "대한매일신보", ~
  6. 강춘애, "한국 관묘와 중국 관우희 연구", 샤머니즘연구, 4 (2002), 한국샤머니즘학회
  7. 구은아, "서울의 관제묘와 관제신앙", 문명연지, 13(1) (2012), 한국문명학회
  8. 금장태, "유교사상의 문제들" (2003), 한국학술정보
  9. 金龍國, "關王廟建置考", 향토서울, 25 (1965), 서울시사편찬위원회
  10. 김탁, "한국의 관제 신앙" (2004), 선학사
  11. 김명자, "安東의 關王廟를 통해 본 지역사회의 동향", 한국민속학, 42, pp.75~104 (2005), 한국민속학회
  12. 김일권, "한말시기 도교적인 종교정체성과 삼교통합주의의 흐름-관우신앙의 성장과 선음즐교의 전개를 중심으로", 종교연구, 32 (2003), 한국종교학회
  13. 김필래, "관우설화 연구", 한성어문학, 17 (1998)
  14. 민선희, "朝鮮後期 東萊 地域 社會의 엘리트와 天主敎 受容者들 그리고 이에 관한 古文書" (1995), 釜山敎會史硏究所
  15.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서울 600년사1․2,․3" (1977)
  16. 손숙경, "19세기 후반 關王 숭배의 확산과 關王廟 祭禮의 주도권을 둘러싼 東萊 지역사회의 동향", 古文書硏究, 23, pp.211~242 (2003), 한국고문서학회
  17. 손숙경, "19세기 중반 동래 지역 기영회 결성과 그 역사적 의미", 역사와경계, (83), pp.71~103 (2012), 부산경남사학회[DOI]
  18. 송지원, "소암권오성박사화갑기념 음악학 논총" (2000), 논문집간행위원회
  19. 신동흔, "아기장수 설화와 진인출현설의 관계", 고전문학연구, 5 (1990), 한국고전문학연구회
  20. 심승구, "조선의 정치와 제도" (2003), 집문당
  21. 유성웅, "고금도(古今島) 관왕묘(關王廟) 연구", 동방학, (32), pp.359~401 (2015), 동양고전연구소
  22. 윤선자, "일제의 종교정책과 신종교", 한국근현대사연구, 13 (2000)
  23. 이경선, "關羽信仰에 관한 考察", 논문집, 8 (1974), 한양대
  24. 이능화, "조선도교사" (1986), 보성문화사
  25. 이방원, "일제하 미신에 대한 통제와 일상생활의 변화", 동양고전연구, (24), pp.281~314 (2006), 동양고전학회
  26. 이용범, "한국무속의 관우신앙, In 關羽信仰과 關帝廟", 인하대학교박물관․한국종교사연구회 주최 학술심포지움 발표논문집 (2003)
  27. 이 욱, "장서각소장의궤해제" (2001), 한국학중앙연구원
  28. 이유나, "조선 후기 關羽신앙 연구", 동학연구, (20), pp.1~16 (2006), 한국동학학회
  29. 이훈상, "朝鮮後期 吏胥集團과 武任集團의 組織運營과 그 特性-全羅道 南原의 各種 先生案", 한국학논집, 17 (1990), 계명대 한국학연구원
  30. 장장식, "서울의 관왕묘 건치와 관우신앙의 양상", 민속학연구, (14), pp.403~440 (2004), 국립민속박물관
  31. 조용구, "한글한자문화 제6집" (2001),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
  32. 조재송, "『三國演義』 關羽形象에 대한 사상사적 고찰", 중국학연구, 16(1) (1999), 중국학연구회
  33. 최래옥, "아기장사 전설의 연구", 한국민속학, 11 (1979)
  34. 하정용, "日本의 關帝廟와 關羽信仰의 展開에 대하여", 민속학연구, (13), pp.323~352 (2003), 국립민속박물관
  35. 한국신종교 실태조사보고서, "한국종교학회", ~ (1985)
  36. 황현, "매천야록" (1994), 교문사
  37. 中村栄孝, "朝鮮における関羽の祠廟について-壬辰․丁酉倭乱と「関王廟」の創始", 天理大学学報, 24 (1973)
  38. 桑野栄治, "朝鮮後期における国家祭祀儀礼の変動-壬辰倭乱直後の朝鮮と明朝", 久留米大学文学部紀要國際文化學科編, 23 (2006)
  39. 本田 洋, "社会空間の人類学-マテリアリティ․主体․モダニティ" (2006), 世界思想社
  40. 村山智順, "조선의 귀신" (1993), 동문선
  41. 幣原坦, "朝鮮史話" (1926), 富山房
  42. Charles A. Clark, "Religios of Old Korea" (1932), Fleming H Revell Co
  43. Prasenjit Duara, "Superscribing Symbols: The Myth of Guandi, Chinese God of War", The Journal of Asian Studies, 47 (1988), Association for Asian Studies
  44. Kenneth M., "새 하나님 새 민족" (1997), 한국장로교출판사
  45. 신기욱, "한국의 식민지 근대성" (2006), 삼인
  46. 앙드레 슈미드, "제국 그 사이의 한국 1895-1919" (2007), 휴머니스트

관련 논문AI추천

이 간행물의 다른 논문 (9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