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多)공화국 인민’에서 ‘다(多)국가 시민’으로- 소비에트 공화국 연방의 해체와 고려인 -
from the People of Multi Republics to the Citizen of Multi Nations -the dissolution of the USSR and the Koreitsy
1
조회
0
다운로드
15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은 연합보다도 한 단계 더 높은 결합 형태, 곧 유럽과 아시아에 걸친 다(多)국가 간의 연방이었다. 소비에트 초기 연해주 고려인들은 고려인으로서의 문화와 아이덴티티를 간직한 채 ‘소비에트 인민’으로서의 긍지와 열정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소비에트 연방의 민족정책은, ‘민족과 민족적 편견에 대한 양보정책’-민족 형성(코레니자치야)에서 ‘모든 노동자의 조국’이자 ‘유일한 사회주의국가’로서의 소비에트에 대한 사랑-민족 융합으로 바뀌어 갔다. 고려인들의 민족적 아이덴티티보다 소비에트 강화가 더욱 중요한 과제가 되어간 것인데, 그 결과 고려인들은 강제이주와 함께 거주의 제한 곧 특별이주민이라는 낙인이 찍힌 ‘적성 인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중앙아시아의 고려인들은 ‘적성 인민’이 아닌 진정한 ‘소비에트 인민’이 되고자 노력했고, 제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소비에트 연방 전체에서도 칭송받는 사회주의 노동영웅이 되었다. 이주의 자유는 주어지지 않았지만 고려인들은 ‘소비에트 인민’ 아닌 ‘소비에트 인민’이 되고자 했으며, 그 결과 53년 스탈린 사후 여러 소비에트 공화국들로 구성된 국가의 인민, 곧 ‘다(多)공화국 인민’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거주 이전의 자유와 함께 시작된 장거리 ‘고본질’은 고려인들의 집단거주와 생활양식을 바꾸어 놓았다. 고려인들 특유의 소민족 공동체와 콜호즈 기반시스템을 활용한 ‘고본질’ 특히 장거리 고본질은, 중앙아시아의 소비에트 공화국을 거점으로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공화국을 비롯한 여러 소비에트 공화국을 넘나드는 ‘유농(遊農)’형 농업이었다. 고려인들은 콜호즈에서 도시로 거주 지역을 옮기는 한편, 콜호즈를 중심으로 한 소비에트 인민에서, 공화국들을 넘나드는 시장 중심의 시민으로 변모해 갔다. 이 시기의 고려인들을 ‘다(多)공화국 시민’이라 한다면, 소비에트가 해체된 뒤 만들어진 독립국가들 간의 연합(CIS) 이후의 고려인들은 ‘다(多)국가 시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소비에트 공화국 사회주의 연방’이라는 공화국들로 이루어진 단일한 국가가 ‘여러 공화국들의 연합’으로 바뀌었고, 고려인들은 중앙아시아의 한 공화국의 시민이자, 그곳 연합의 (미완의) 시민이 되었다. 이후 ‘다(多)국가’에는 하나의 국가가 더 추가되었는데 그것은 한반도의 남쪽 한국이다. 중앙아시아 공화국의 언어, 교육, 경제 정책과 한국이 추진하게 된 이주노동정책과 재외동포정책 등은 고려인들의 유출과 유입을 촉진시켰고, 고려인들은 제한적이긴 하지만 한국에서의 시민적․사회적 권리와 책무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독립국가연합과 한국을 가로지르는 ‘다(多)국가 시민’이 탄생한 것이다.
Abstract
Union of Soviet Socialist Republics (USSR) was the upper level of union than the European Union(EU), the union of multi nations. The Koreitsy in the Primorsky Krai on the beginning Soviet Union, can be lived with the pride and passion as ‘the people of Soviet’. But the national policy of USSR moved from ‘the concession policy of nation and national prejudice (building of nations : korenizatsiia)’ to ‘the Soviet patriotism as the motherlnd of labor and the only socialist nation (blending of nations). Not the national identity of the Koreitsy but the consolidation of Soviets, went to the more important assignment. As the result, the Koreitsy must be the ‘enemy people’ branded as the special immigrant in the forced migration and the limited residence. The Koreitsy of the Central Asia struggled to be the real ‘soviet people’, not the ‘enemy people’. Eventually got to be the hero of socialist labor. The freedom of movement was not given to them, but they struggled to be the soviet people, consequently they became to be the people of soviet republics, namely ‘the people of multi republics’ after Stalin’s death(1953). But ‘the long distance Gobonjil’ started with the freedom of movement, changed the ethnic enclave and life style of the Koreitsy. The long distance Gobonjil utilized the community and the kolkhoz system of the Koreitsy was the trans-republican ‘nomadic farming’ over the soviet republics of the Central Asia such as the Ukrainian SSR. The Koreitsy transferred to the urban areas from the kolkhoz, and turned into the market-oriented citizen over the soviet republics. The Koreitsy at that time was the citizen of the multi republics, then the CIS Koreitsy in the post-Soviet era was the citizen of the multi nations. The unitary state constituted Soviet Socialist Republics changed to the confederation of multi republics, and the Koreitsy got to be the citizen of a Central Asian republic, equally the citizen of incomplete union CIS. Since then one more nation is added to the multi nations, that is South Korea. The policies of language, education, and economy on the Central Asian nations, and the policies of migrant labors and overseas Koreans on the South Korea precipitate outflow and inflow of the Koreitsy. And the Koreitsy can enjoy the civil and social rights/ responsibilities restrictively. The citizen of multi nations across the CIS nations and South Korea was born.
참고문헌 (55)
- 구자정, "소비에트 연방은 왜 해체되었는가? - 소련의 “이중 체제”와 “민족 창조 정책”을 통해서 본 소련 해체 문제의 재고 -", 역사학보, (210), pp.357~405 (2011), 역사학회
- 국사편찬위, "러시아․중앙아시아 한인의 역사(상권)" (2008)
- 기계형, "젠더의 시각에서 본 중앙아시아 고려인 이주 :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여성의 행위자로서의 경험과 역사적 기억을 중심으로 -", 역사학보, (212), pp.61~91 (2011), 역사학회
- 김게르만, "CIS 고려인의 역사성과 정체성(원제 : 소련의 붕괴와 CIS 고려인들", 세계한민족포럼 논문집 (2009)
- 김경학, "중앙아시아 고려인의 한국 이주와 정착 : 광주 ‘고려인마을’을 중심으로", 국제지역연구, 17(4), pp.259~282 (2014), 국제지역연구센터
- 김병학, "한진전집 : ebook" (2011), 인터북스
- 김병학, "재소고려인의 노래를 찾아서 2" (2007), 화남출판사
- 김승화, "소련 韓族史" (1989), 대한교과서주식회사
- 김영술, "중앙아시아 고려인의 광주지역 이주와 문화변용에 관한 연구", 디아스포라연구, 7(1), pp.131~161 (2013), 세계한상문화연구단
- 김호준, "유라시아 고려인 150년" (2013), 주류성출판사
- 김효실, "안산 땟골에 첫 고려인 자녀 지원센터", 한겨레신문, ~ (2014)
- "독립신문", ~ (1922)
- 박명진, "고려인 희곡 문학의 정체성과 역사성 - 연성용 희곡을 중심으로 -", 한국극예술연구, (19), pp.171~217 (2004), 한국극예술학회
- 반병률, "신한촌과 노령 한인사회, 근대독립운동사와 연해주 신한촌", 해외한민족연구소 학술대회 (1999)
- 반병률, "러시아 한인(고려인)사회와 정체성의 변화 ―러시아원동 시기(1863~1937)를 중심으로―", 한국사연구, (140), pp.99~124 (2008), 한국사연구회
-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출입국․외국인 정책 통계월보: 2014년 4월호", ~ (2014)
- 백태현, "중앙아시아 고려인의 고본질", 비교문화연구, 1(2000) (2000)
- 서규환, "사회주의와 민족문제- 소련의 민족정책을 중심으로 -", 슬라브硏究, 23(1), pp.1~30 (2007), 러시아연구소
- 스쩨빤 김, "스탈린의 한인 강제이주와 잃어버린 모국어" (1990), 역사비평
- 신소영, "고려인촌 바뀐 ‘땟골’-가게 진열 보드카만이 ‘검은 노동’ 위로", 한겨레신문, ~ (2013)
- 신명직, "가리봉을 둘러싼 탈영토화와 재영토화― 87이후의 가리봉을 그린 소설과 영화를 중심으로", 로컬리티 인문학, (6), pp.47~90 (2011), 한국민족문화연구소
- 신명직, "재일 코리안과 다국가 시민권 : 영화 ‘피와 뼈’․‘디어 평양’․‘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를 중심으로", 석당논총, (56), pp.37~81 (2013), 석당학술원
- 이정은, "귀환 혹은 순환: 아주 특별하고 불평등한 동포들" (2013), 그린비
- 심헌용, "뿌찐 시대의 러시아 민족정책과 한인사회 전망", 아시아태평양지역연구, 3(1) (2000), 아시아태평양지역연구소
- 양원식,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고려인들의 사회문제", 재외한인연구, 7(1) (1998)
- 엄지원, "3대째 만에 모국 왔지만, 염색공장에서 3년 일하다 폐결핵으로", 한겨레신문, ~ (2013)
- 연성용, "신들메를 졸라메며" (1993), 예루살렘
- 윤병석, "소비에트 건설기의 고려인 수난과 강제이주", 中央史論, 21 (2005)
- 이경숙, "블라디보스토크 한인학교의 변동 1905~1922", 정신문화연구, 34(1), pp.7~40 (2011), 한국학중앙연구원
- 이광규, "러시아 연해주의 한인사회" (1998), 집문당
- 이광수, "그 당시의 追憶 : 露領情景", 동광, (26) (1931)
- 이명재, "소련지역의 한국문학 : ebook" (2002), 국학자료원
- 이봄철, "고려인 농업형태인 고본질의 변화와 시설농업의 전망", 전남대학교 세계한상문화연구단 국내학술회의집, 10 (2007)
- 이승하, "카자흐스탄 고려인 시인 강태수 시세계 연구", 한국문학과예술, 8 (2011)
- 이정선, "김준의 십오만원 사건에 나타난 항일투쟁의 형상화 고찰", 국제한인문학연구, 5 (2008)
- 이채문, "중앙아시아의 이산민족과 초국가주의 고려인과 아흐스카 튀르크인의 비교", 한국동북아논총, 15(2), pp.245~272 (2010), 한국동북아학회
- 이채문, "재외한인의 자영업에 관한 연구 카자흐스탄 고려인의 사례를 중심으로", 한국동북아논총, 13(46), pp.5~36 (2008), 한국동북아학회
- 이천영, "귀환동포 지원법 반드시 제정돼야", 경기도 외국인 정책 간담회 및 지원단체 활동가 네트워크 활성화를 위한 워크숍 자료집 (2013), 경기도 외국인 인권지원센터
- 이원용, "1937년 고려인 강제이주의 원인 및 과정*", 유럽사회문화, 1, pp.149~199 (2011), 인문학연구원
- 이혜경, "이주의 여성화와 초국가적 가족:조선족 사례를 중심으로", 한국사회학, 40(5), pp.258~298 (2006), 한국사회학회
- 이혜경, "혼인이주와 혼인이주 가정의 문제와 대응", 한국인구학, 28(1), pp.73~106 (2005), 한국인구학회
- 전병국, "소련의 민족 정책과 고려인 강제 이주", 일본연구, (15), pp.585~604 (2011), 글로벌일본연구원
- 정태수, "망국 직후의 신한촌과 한민학교 연구", 한국교육사학, 13 (1991), 한국교육사학회
- 조규익, "舊蘇聯 高麗詩人 강태수의 作品世界", 대동문화연구, (76), pp.487~518 (2011), 대동문화연구원
- 최대희, "소비에트 민족정책과 스탈린의 민족문제 ‘해법’", 인문과학, 16 (2003)
- 한성미, "소수민족집단체류지역(Ethnic Enclave)으로서의 옌볜거리의 장소성 형성 요인 분석", 한국조경학회지, 36(6), pp.81~90 (2009), 한국조경학회
- 해외문화홍보원, "서울 속 ‘작은 러시아’", 코리아넷뉴스, ~ (2013)
- 허혜란, "체로키 부족" (2008), 실천문학
- 허혜란, "체로키 부족" (2008), 실천문학
- 홍용희, "구소련 고려인 디아스포라 시 연구 -양원식의 시 세계를 중심으로-", 한국근대문학연구, (22), pp.491~518 (2010), 한국근대문학회
- 홍웅호, "레닌기치 에 나타난 1938년 카자흐스탄 고려인 사회", 아시아문화연구, 32, pp.347~378 (2013), 아시아문화연구소
- 홍웅호, "강제이주 직후 중앙아시아 고려인 사회의 스타하노프운동", 韓國史學報, (54), pp.221~253 (2014), 고려사학회
- 황영삼,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경제공동체의 형성과 발전과정의 재조명", 역사문화연구, (26), pp.45~82 (2007), 역사문화연구소
- 和田春樹, "ロシア領極東の朝鮮人 一八六三~一九三七", 社会科学研究, 40 (1989)
- "Migration and Culture" (2010)[UR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