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韓両国の八萬大藏經硏究とその成果 - 鄭晏と分司大藏都監を中心として -
A Study of The Eighty-Thousand Tripitaka in Japan and Korea and their Resul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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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팔만대장경에 관한 연구는 한일 양국에서 현재까지 많은 성과를 얻어왔으나 그 조성 장소 등 핵심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 해명되지 못다는 상황이다. 팔만대장경판 조성사업은 주로 왕실이나 국가적 차원에서 추진된 것이었음임에도 고려시대에 최씨 정권기에 고위관직을 지낸 정안(鄭晏, ?-1251)은 私財를 내어 분사대장도감에서 경판의 일부를 조성하기도 하였다. 정안은 하동 출신이며 최씨와 친척인 인물이다. 하동은 최씨 일가가 관할하는 진주나 분사대장도감이 설치된 남해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대장경판 조성사업과 관계하여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정안과 대장경판 조성사업과의 관계를 보기 위해 정안이 발원하여 조성한 경판과 그것으로 인쇄된 경전의 일본 전래에 대해서 개관하였다. 그리고 일본과 한국의 팔만대장경에 관한 수많은 연구 성과 가운데 특히 양국이 정안의 대장경판의 조성과 분사대장도감을 어떻게 조명하였는지 주된 내용과 평가에 대해 확인하고, 그러한 연구가 미친 영향에 대해서 검토하였다. 정안이 발원하여 조성된 경판 중에서 『佛說豫修十王生七經』은 일본불교와 관계할 것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대장경판의 조성에 있어서 강화도에 대장도감을 두고 남해에 분사대장도감은 둔 것으로 본다. 그러나 대장경판을 비롯하여 고려시대에 조성된 보유판 및 사간판 등에 새겨진 간기와 각수들을 분석하면 고려시대의 정치와 사회상을 파악할 수 있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특히 이를 통해 조성장소와 각수들이 활동한 영역을 추적함으로써 대장도감이 남해에 있었다는 견해, 분사대장도감은 남해뿐만 아니라 기타 지역에도 설치가 되었다는 견해도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이 조성장소에 관한 새로운 인식은 후지타 류사쿠(藤田亮策)의 논문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각판한 각수들에 대한 파악과 분석이라는 획기적인 시도로 인하여 새로운 견해가 생기게 된 것이다. 일본에서 대장도감과 분사대장도감에 관한 연구는 후지타를 제외한 1950년 이후에는 확인할 수 없다. 일본의 경우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 인쇄된 인경본이 많이 남아 있어 이 자료를 조명한 연구가 앞서게 되었기에 정안에 관한 연구가 적은 것이라 짐작된다. 또는 양국의 연구들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연구자들은 자료의 역사성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내용을 잘못 해석하여 범한 오류 등이었다. 상대방의 견해를 평가 혹은 비판하면서 새로운 의견이 제시되었고, 이를 통해 연구가 성장해 간 것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세계적인 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의 연구를 발전시키는 방법에는 한일의 학자들이 지속적으로 협조하며 연구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Abstract
A lot of research results have been obtained in Japan and Korea on The eighty-Thousand Tripitaka. However, places that were built, such as its construction site, has not been revealed yet. By the way, the creation of the Tripitaka woodblocks was done in a national dimension, but Jeong An(鄭晏) who was a bureaucrat of the Goryeo period issued personal property and made a part of the Tripitaka woodblocks at Bunsadaejangdogam(分司大藏都監). Jeong An is from Hadong(河東). He had a relative relationship with Mr. Choi who was the authority of the Goryeo period. Hadong is close to Jinju(晋州) controlled by Mr. Choi(崔氏), Namhae(南海) where there was a Bunsadaejangdogam. He has something to do with the work of making woodblocks. Therefore, First, I outlined the woodblocks of the scripture that Jeon An created personally. Next, among numerous research results on Thr eighty-Thousand Tripitaka in Japan and Korea, I reviewed the Japanese research results on Jeon An and Bunsadaejangdogam. And I examined how the results were evaluated in Korea and what kind of research was reflected in the research. Among the woodblocks of the scripture that Jeon An made, “Yu -xie-shi-wang-Sheng-qi-Jing(佛說豫修十王生七經)” proved to be related to Japanese Buddhism. By the way, it is generally said that Daejangdogam(大藏都監) was installed in Ganghwa Island(江華島) and Bunsadaejangdogam was set up in Jinju and Namhae. However, by analyzing the publishing records and sculptures(刻工者) on POYU Woodblock(補遺板) and SAGAN Woodblock(寺刊板) which were built in the Goryeo period, a new opinions that Daejangdogam was in Namhae, and that Bunsadaejangdogam was also installed in areas other than Jinju and Namhae appeared. Fujita Ryosaku(藤田亮策) has suggested only places where the Tripitaka woodblocks were made. Later, in Korea, a new view came out by analysis of sculptures. Looking back on the research on The eighty-Thousand Tripitaka in Japan and Korea, Korean researchers are criticizing the fact that Japanese researchers did not consider the background on which The eighty-Thousand Tripitaka was made. Also, in Korea, some of the views of Japanese researchers in the early 1900s were misinterpreted. However, criticizing or evaluating others' views, new perspectives are presented. This will promote research. This causes the research to be promoted. In order to develop the research of the eighty-Thousand Tripitaka, which is a world cultural heritage, it is important for researchers from Japan and Korea to cooperate sustainab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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