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기 한국영화의 기술 여건과 입지 변화의 양상 연구
A study on the technological conditions and changes in position of Korean cinema in the liberation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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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고에서는 해방기 남한 지역에서 한국영화가 어떠한 기술적 환경 하에 놓였으며 어떻게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였는지를, 극영화를 중심으로 탐구하였다. 아울러 미국영화 등 수입 외국영화뿐 아니라 인접 대중 서사물, 그 중에서도 특히 연극 작품에 대한 한국영화의 입지가 어떻게 변화하였는지를 고찰하였다. 기술적 차원에서, 해방기 한국영화 제작의 전반적인 양상은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첫째, 필름 너비를 기준으로 16mm 필름이 35mm 필름에 비해 많이 사용되었다. 시기별로는 1946년까지 35mm 필름으로 극영화 촬영이 행해지다가 1947년 이후 16mm 영화가 다수를 이루게 되었다. 둘째, 1949년 상반기까지는 무성영화의 비중이 과반 이상을 차지하였으나, 1949년 하반기부터는 모든 작품이 발성영화로 만들어졌다. 셋째, 사회 질서 유지와 범죄 예방과 관련된 ‘계몽영화’에 있어서는 정부 수립을 전후한 시기에 나온 일련의 작품들에서 35mm 발성영화로 기획·제작되는 경우가 많았다. 넷째, 수적으로 가장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던 상업성에 기반을 둔 통속적 극영화의 경우, 16mm 무성으로 만들어지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하지만 1948년 이후에는 기술적으로 의미 있는 시도가 여러모로 펼쳐지기도 하였다. 주목되는 점은, 이러한 동향 하에 해방기 한국영화가 미국영화를 위시한 수입 외국영화뿐 아니라 연극으로 대변되는 인접 대중 서사물과 텍스트적 상호 연관성을 지니면서 그 위상을 조정해 갔다는 사실이다. 해방기 한국영화의 위상 변동 양상을 기술적인 측면에서 구명해 볼 필요가 있는 이유라 할 만하다.
Abstract
In this paper, I researched what technical environment Korean cinema were in the liberation period and how to adapt to such problems, focusing on feature film. In addition, I explored how the position of Korean films at that time changed not only for imported foreign films such as American films, but also for popular epic genres, especially theater. In technical terms, the overall aspects of Korean film production in the liberation period are summarized as follows. First, based on the width of the film, 16mm film was used more than 35mm film. By period, the film was filmed with 35mm film until 1946, but after 1947, there were a number of 16mm films. Second, until the first half of 1949, the proportion of silent films occupied more than half, but from the second half of 1949, all works were produced as talkie films. Third, in the “enlightenment movie” related to maintaining social order and preventing crime, there were many cases that were planned and produced with 35mm talkie before and after the establishment of the South Korean government. Fourth, in the case of popular drama based on commerciality, which was the most numerically, the ratio made of 16mm silent was relatively high. However, after 1948, several technically meaningful attempts were made. It is noteworthy that under these trends, Korean films in the liberation period have adjusted their position by having textual correlation with adjacent public narratives such as plays, as well as with imported foreign films such as American films. This is why it is necessary to explore the process of changing the position of Korean cinema during the liberation period in the technical fie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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