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암 유희춘의 가족서사와 도학의 재발견
A Study on the Family Narrative of Miam Yoo Hee-chun and the Rediscovery of Taox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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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글은 16세기 중반 호남의 유학자였던 미암 유희춘의 학술과 사상을 감성유학의 관점에서 고찰한 것이다. 나는 이 글에서 유희춘에 대한 ‘새로운 전망’의 필요성과 그의 학술사상에 대한 ‘도학적 평가’의 문제를 제기하였다. 유희춘은 도학과 관련된 가계의 내력 속에서 최산두와 김안국을 비롯한 당대의 도학자들에게 수학했고, 호남의 대표적인 도학자였던 김인후와는 동학이자 사돈지간이 됨으로써 호남의 명사들과 혼맥의 관계망을 형성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19년간 유배객으로 유폐되었지만 주자학에 대한 연찬을 통해 학문적으로 일가를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강학을 통해 제자를 양성하였다. 절망의 기간을 ‘존주자(尊朱子)’로 일관했기에 해배 후에 재출사하여 학자적 관료로서, 경연의 장관으로 그의 학술적 역량을 발휘하였다. 유희춘의 유학자로서 시대적 역할은 성학(聖學)의 시대에 ‘도학으로서 주자학’의 엄밀한 학술적 체계를 수립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 글에서 유희춘의 도학적 연원을 그의 가계와 가족서사를 통해 접근하면서 그의 학술적 역량과 업적에도 불구하고 그가 한국유학 및 호남유학에서 매우 저평가되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전제로 하여 그의 삶과 저술에 대한 재배열을 통해 도학자로서 유희춘의 사유와 감성적 실천의 면모를 재구성하였다.
Abstract
This article examines the academics and thoughts of Miam Yoo Hee-chun, a Neo-Confucian scholar from Honam in the mid-16th century, from the perspective of Emotional Confucianism. In this article, I raised the need for a new perspective of Yoo Hee-chun and the question of a Taoxue evaluation of his academic thoughts. Yoo Hee-chun learned from contemporary Neo-Confucian scholars including Choi Sando and Kim An-guk in the family's history related to Taoxue. By becoming a relationship connected by marriage, it formed a “relationship network connected by marriage” with prestigious families in Honam. In this process, for 19 years, he became a separated person after committing a crime and being punished, but through the continuous learning of Neo-Confucianism, he not only became academically prominent, but also trained his disciples through lectures and questions. Since his period of despair was consistent with “Respect for Zhuzi,” after he was released from exile, he entered the government office again, as a scholarly bureaucrat, and showed his academic competence as minister. Yoo Hee-chun's role as a Neo-Confucian scholar was to establish a rigorous academic system of ‘Zhuzixue as a Taoxue' in the era of Sage learning. In this article, I approached Yu Hee-chun's "new Confucian origin" through his family and family narratives. Through this, I pointed out that despite his academic competence and achievements, he was very undervalued in Korean Confucianism and Honam Confucianism. On the premise of this problem consciousness, I rearranged Yoo Hee-chun's life and writings. In this way, I reconstitute the aspects of the thoughts and emotional practice of Taoxue scholar Yu Hee-ch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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