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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20세기 초 신호적의 자료적 성격에 대한 고찰

Characteristics and Utilization of Korean Household Registers in 1896-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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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조선 정부는 신호적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호적 제도를 도입했다. 중앙정부에서 표방한 신호적 제도의 원칙은 전국의 호구를 철저하게 파악하는 것으로, 전통적ㆍ원론적인 원칙의 표방이기도 하면서 근대 국민국가에서 전 인구를 파악하여 국가 운영에 활용하는 주민등록이나 센서스를 지향한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신호적이 호마다 3냥의 세금을 부담하는 조세 운영의 기초 자료로 활용됨에 따라 호적 작성을 담당하는 각 군에서 오히려 이전보다 호구수를 줄여서 호적을 작성했고, 각 지역 내에서는 총액제와 공동납 등 기존의 호정 관행을 따라 호세에 대응했다. 이에 따라 국가의 의도와 달리 신호적 제도가 시행된 시기에는 전국 호구수가 매우 적게 파악되었다. 1906년 이후 경찰력을 동원하여 호구 조사를 실시하자 호구수가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전국에 통일된 양식의 호적표가 배포되었는데도 신호적의 기재 방식과 내용은 지역별로 큰 차이를 보인다. 지역 내 관행을 따라 호적에 등재될 호와 사람을 선별하고 각 지역에 최적화된 방식으로 기록을 남겼기 때문이다. 어떤 지역에서는 기존의 ‘부세’ 행정에서 중요하게 여겼던 직역, 환과 여부, 호의 계승에 대하여 기록하였다. 행정 중심지에서는 사람과 가옥에 대한 자세한 기록을 남겼지만, 다른 지역의 호적은 호세 운영을 고려하며 작성되었다. 개개인의 정보보다는 행정단위별 호수가 중요하기 때문에 동거친속 기재가 충실하지 않거나, 복수의 개별세대가 하나의 호로 편제되는 사례 등이 있었다. 이처럼 신호적은 중요한 인구 자료이지만 인구 파악률이 낮고 시기별, 지역별로 자료의 성격이 달라지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자료의 한계를 보정하고 상대적으로 인구 파악률이 높다고 간주되는 지역의 호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등 자료의 한계를 극복하고 장점을 살리기 위한 다양한 방법론이 개발되어야 할 것이다.

Abstract

In 1896, the Joseon government introduced a new type of household registration system called Sinhojeok, ‘new’ household registers. The central government advocated this new system pursuing grasp the households and populations across the country thoroughly, which was not only a traditional and basic principle but also aimed at a census in which the entire population was identified and utilized in a modern nation-state. However, as the ‘new’ household registers were mainly utilized for tax operation, levying 3-nyang to each household, each county that was in charge of compiling the ‘new’ household registers grasped a reduced number of households than before. People in each county responded to household tax of the country according to the existing practice of paying tax. The total number of households and population nationwide shrunk, contrary to the intention of the central government to grasp every household and person in the country. The number of populations and households nearly doubled after police surveyed households in 1906.The central government distributed a unified table form to each county, but the contents of the ‘new’ family registers were differentiated region by region. This was because households and people listed on the registers were selected to comply with the local practices. Jikyeok(a documented occupation in the corvée tax system), whether a widow or widower, and a succession of a household were recorded according to the former taxation customs. Detailed records of people and houses were listed only in some administrative centers. The description of family members in a household was not faithful since the number of households in a county was more important than individual information. Sometimes, multiple households de facto were recorded as one household in the document. Sinhojeok is important population data, but it has limitations in that the population identification rate is low and the characteristics of the records vary by period and region. Various methodologies should be developed to overcome the limitations of the data, such as correcting the weakness of the data and actively utilizing the data in which areas are considered to have a relatively high population identification r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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