墳周土器를 통해 본 5-6世紀 韓日關係一面
A Historical Meaning of Korean Cylindrical Pottery Impluencing Japanese Cylindrical Pottery
0
조회
0
다운로드
7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삼국시대 한국 서남부지역에서는 세가지 유형의 분주토기들이 고분 장엄구로 사용되었다. 당시 서남부지역의 중심권을 이루고 있었던 나주 반남 일대의 대형 고분에서는 筒A形의 분주토기가 사용되었고 나주 반남 일대를 둘러싼 주변 지역의 토착계 중형 고분에서는 壺形의 분주토기가 사용되었으며 같은 주변지역이라도 일본과 관련된 장고분에서는 筒B形의 분주토기가 사용되었다. 한국 서남부지역에서 사용되었던 이 세가지 유형의 분주토기는 일본 北九州지역과의 교류 속에서 壺A形, 筒A形, 筒B形의 순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6세기중엽경이 되면 세가지 분주토기 모두 현지에서는 더 이상 지속되지 못하게 되지만 壺形과 筒A形두가지 분주토기는 일본으로 파급되었는데 이는 현지 마한계 주민들의 일본 이주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마한계 주민의 일본 이주는 그 이전부터 백제의 영역 확장과 관련되어 간헐적으로 이루어져 온 바 있다. 3세기중엽이후부터 백제에 밀리기 시작하였던 마한에서는 3세기 후엽경 아산만권을 중심으로 일본으로의 이주가 이루어졌으며 4세기중반경에는 충청 내륙지역과 전북지역을 중심으로 일본으로의 이주가 이루어졌다. 6세기중엽경에 나타나고 있는 壺形, 筒A形분주토기의 일본 파급이 서남부지역 마한계 주민들의 일본 이주를 의미 한다는 것은 일본으로 파급되지 못하고 완전히 단절되는 筒B形분주토기를 썼던 사람들의 성격을 살펴보면 보다 쉽게 이해된다. 筒B形이 사용되었던 장고분은 거시적으로 보면 大和政權의 일본열도 통합과정에서, 미시적으로 보면 磐井에 의해 北九州지역이 통합되는 과정에서 밀리게 되었던 北九州지역의 세력자가 그 주인공인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자신들의 망명지인 마지막 마한지역이 6세기중엽경 백제에 병합됨에 따라 더 이상 피할 곳이 없어지면서 장고분과 筒B形분주토기를 쓸 수 없게 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결론적으로 6세기중엽경 백제의 병합에 따라 서남부지역의 토착 마한세력 일부는 일본으로 망명하였고 나머지 주민들과 일본에서 망명하였던 세력들은 마지막 안식처를 백제에 복속되었다고 본다.
Abstract
Cylindrical Pottery excavated on/around the mound of tomb is divided into Cylindrical A, Cylindrical B, and Jar types, and each type has different origin and developmental process. First, Cylindrical A type primarily found in Jar-coffin tombs between the mid-5th and earlier half of the 6th centuries pick up it’s idea from Japanese Cylindrical Haniwa, but went through an independent developmental process by adopting local style. Second, Cylindrical B type found in Japanese style Key-hole shaped tombs between the late 5th and earlier half of the 6th centuries was a direct imitation of Japanese Haniwa. Third, Jar A type was first developed around the late 4th and early 5th centuries by imitating Japanese Jar type Haniwa, and then changed to Jar B type and was diffused to Japan in the mid-6th century.
참고문헌 (63)
- "日本所在百濟文化財調査報告書Ⅰ" (1999)
- "日本所在百濟文化財調査報告書Ⅱ" (2000)
- "日本所在百濟文化財調査報告書Ⅲ" (2002)
- "풍납토성 출토 외래유물에 대한 검토", 36 (2002)
- "光州香嶝遺蹟" (2004), 湖南文化財硏究院
- "馬韓圈域出土兩耳附壺小考", 10 (1999)
- "몽촌토성발굴조사단 『 정비·복원을 위한 몽촌토 성 발굴조사 보고』" (1994)
- "榮山江流域前方後圓墳과 埴輪" (2001), 全州博物館特別展圖錄
- "光州明花洞古墳" (1996), 국립광주박물관
- "鳥足文土器考", 10 (1999)
- "大伽倻의 古代國家形成" (1996)
- "박물관 (도록)" (2000), 배재대학교박물관
- "二重口緣土器小考", 33 (2001)
- "4-6世紀百濟地域과 日本列島의 關係", 11 (2004)
- "榮山江流域三國時代土器硏究" (2006)
- "영남출토의 土師器系土器" (2001), 부산고고학연구회
- "固城松鶴洞古墳群第1號墳發掘調査報告書" (2005), 東亞大博物館
- "한반도에서 출토된 倭관련 문물", 2 (2005), 한일관계사연구논집 편찬위원회
- "榮山江流域前方後圓墳出土圓筒形土器에 관한 考察", 31 (2000), 忠南大學校百濟硏究所
- "4-5世紀倭에서 加耶·百濟로의 交易루트와 古代航路", 7 (2002)
- "나주 신촌리 9호분", (9) (2001), 국립문화재연구소
- "前方後圓形古墳と墳周土器" (2005), 西都原考古博物館
- "咸平老迪遺蹟" (2005), 湖南文化財硏究院
- "해남 방산리 장고봉고분 시굴조사보고서" (2001), 국립광주박물관
- "和順白巖里古墳地表調査" (2004), 국립광주박물관
- "夢村土城의 年代와 性格『」百濟初期文化의 考古學的再照明』" (1987), 韓國考古學會
- "全南의 石室墳" (1996), 全羅南道·木浦大博物館
- "湖南地域石室墳과 百濟의 關係" (1997), 韓國考古學會
- 林永珍, "馬韓의 消滅過程에 대한 考古學的考察", 12 (2000)
- 林永珍, "全南地方의 長鼓墳" (2001), 동아대박물관
- 林永珍, "韓國の墳周土器" (2002), 同成社
- 林永珍, "伏岩里古墳群" (1999), 全南大學校博物館 羅州市
- 임영진, "나주 덕산리 고분군" (2002), 전남대학교박물관·나주시
- 임영진, "광주 월계동 장고분" (2003), 전남대학교박물관
- "「 三韓의 國家形成『」韓國學報』3" (1976)
- 최성락, "무안 고절리고분" (2002), 목포대학교박물관
- 최성락, "함평 중랑고분" (2003), 목포대학교박물관
- 최영주, "조족문토기 고찰" (2006)
- "국립박물관고적조사보고제25책" (1993)
- "군산 축동·수송지구 택지개발지구내 문화유적 발굴조사 현장설명회 자료", 35 (2005)
- "무안-광주간 고속도로공사구간내 문화유적 발굴조사 현장설명회 자료" (2005)
- "圓筒形土器機能에 대한 考察『」三佛金元龍敎授停年退任紀念論叢』" (1987)
- "前方後圓形墳の築造モデル" (1996), 雄山閣
- "土器資料를 통해 본 3-5世紀百濟와 倭의 交涉關係" (2003), 한신대학교
- "ホケノ山古墳(公開講演會資料)" (2000)
- "韓國全羅南道の圓筒形土器" (2002), 同成社
- "榮山江流域と慕韓" (1995), 考古學硏究會
- "百濟土器·馬韓土器と倭" (2001), 枚方市
- "最近の埴輪硏究", 79 (2002), 雄山閣
- "日本九州및 近畿地域의 韓國系遺物" (2002), 복천박물관
- "光州月桂洞1號墳出土埴輪の評價", 137 (1997), 古代學硏究會
- "全南地方出土埴輪의 意義", 32 (2000), 忠南大學校百濟硏究所
- "北部九州における圓筒埴輪の規格性", 71 (1996)
- "天滿古墳群(2號墳) 現地說明會資料, 油印物" (1997)
- "平底短頸甁覺書-東國の渡來文化硏究", 5 (1995)
- "須惠器定型化への過程" (2002)
- "2條突帶の圓筒埴輪", 1 (1999), 埴輪檢討會
- "「 日本における初期須惠器の系譜『」伽倻および日本の古墳出土遺物の比較硏究』" (1994)
- "韓國出土の圓筒形土器と埴輪形土製品" (1996), 雄山閣
- "朝鮮半島の前方後圓墳", 26 (1996), 專修大學人文科學硏究所
- "埴輪生産の系譜", 79 (2002), 雄山閣
- 坂靖, "韓國の前方後圓墳と埴輪", 170 (2005), 古代學硏究會
- "朝鮮半島へ渡った彌生人" (1999), 雄山閣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