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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在家信者들의 浮屠(墓塔) 건립 양상과 의의

A Study on the Aspect and Significance of the upasaka Stupa in Chosu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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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불교가 종교로서 유지되기 위해서는 승려와 신도가 있어야 하고, 종교적 활동 공간인 가람이 시설되어야 한다. 그리고 동아시아에서 불교의 전파와 함께 석가모니의 사리탑인 불탑이 세워졌으며, 불교의근간을 이루고 있는 승려들의 사리를 모신 승탑(부도)이 건립되었다. 그런데 정식으로 출가하지는 않았지만 불심이 깊고 수행에도 정진하여 승려 못지않았던 재가신자들에게도 묘탑을 건립해 주었다. 불교적 사후관이 널리 성행한 중국과 일본의 경우는 재가신자들의 묘탑이 많이 건립되었다. 한국의 경우도 재가신자가 불교의 전래와 함께 있었기 때문에 오래 전부터 재가신자의 묘탑이 건립되었을 것으로추정되지만 전하는 기록과 유물로 보아 고려시대부터 건립되기 시작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따라서불교적인 墓塔은 석가모니를 비롯한 승려들에 한하여 건립된 조형물이라는 관념과 인식을 깨야 한다. 그런데 아직까지 이에 대한 조사와 연구는 미진한 실정이다. 재가신자들의 묘탑은 고려시대 처음 건립된 것으로 기록이 전하고 있으며, 조선전기 유력한 인물을중심으로 세워지다가, 조선후기에 들어와 많은 양이 건립되는 양상을 보인다. 조선후기는 불교에 대한인식이 달라지면서 전국적으로 불사가 성행했고, 승려들에 대한 예우도 높아지면서 많은 양의 승탑이건립되었다. 이와 더불어 재가신자들의 묘탑도 승탑 양식과 큰 차이 없이 조성된다. 재가신자들의 묘탑 양식은 石鐘形과 磨崖形이 주류를 이루면서 서울 경기 지역을 중심으로 조성되었다. 조선후기 재가신자들의 묘탑이 많이 건립된 것은 승려와 재가신자를 동일선상에서 인식하였으며, 사후 기념적인 성격으로 인식된 墓塔觀의 변화, 불교적인 사후관의 확산 등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묘탑이 건립된 재가신자들은 사찰이나 승려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불사를 후원하였거나, 재정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던 인물들로 추정된다. 재가신자들의 묘탑은 비록 출가하지는 않았지만 승려 못지않게 불심이깊었던 재가신자들에 대한 인식과 예우가 달라졌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Abstract

The Buddhism for religious functional structure have a monk, many believer, and a buddhist temple to hold worship in front of Buddha. The pagoda had been established for sarira enshrinement when the Buddhism was spread to the East Asia. A monk had been established buddhist priest's funerals and the construction of Stone Stupa and Tab-bi which were built after funerals. Incidentally, The Stupa for a lay Buddhist had been established to the related temple in the East Asia. They have deep the merciful heart of Buddha and contribute to Buddhist rituals and services. Especially, the China and Japan had been many established to the lay Buddhist stupa. But, Scarcely anything in our Korea. There was practically nothing left in ancient Korea. The lay Buddhist stupa in Korea is presumed since the late Korea Dynasty. There are lots of the lay Buddhist stupa in the Chosun Dynasty. According to the historical records about lay Buddhist, the lay Buddhist stupa had been continuously constructed. But,the report of investigation and study about the lay Buddhist stupa is low. According to the historical records and relics, the lay Buddhist stupa had been established to the Korea Dynasty. They had been many established since the late Chosun Dynasty. The monks stupa had been many established to the same time. Originally, the stone stupa had been limitedly constructed. I think that this change see it in a new light. That find a new meaning in the stupa. The people deal with a stupa more memorial building than honorable building. Most of the owners of Stone Stupa were honored people after death. They were highly respected. Also, when they died, the people heavily supported the funeral and the construction of Stone Stupa. The lay Buddhist of deep heart of Buddha received much recognition alike the monk. The lay Buddhist Stone Stupa great give an example in the change of Buddhism and Buddhist 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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