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호남지역 僧塔 연구
A Study on Monk- Stupa of Honam province in the Late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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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조선후기에 건립된 僧塔은 전국적으로 1,000여기가 넘는다. 國師나 王師의 예우를 받던 高僧에 한해 승탑을 조성하던 전통적인 규범이 무너지고 승탑 건립이일반화된 것이다. 이는 유교의 영향을 받은 法統說과 喪葬禮의 변화 그리고 사원경제력의 전승이 주된 이유로 꼽힌다. 조선후기에 건립된 승탑은 탑신의 형태와 옥개석의 유무에 따라 殿閣形, 石鐘 形, 球形으로 분류된다. 17세기에 전각형은 송광사 출신 16國師 승탑의 영향을 받아 탑신이 길어지고 기단부가 약화된 모습으로 제작되었다. 18세기에는 8각의 탑신과 옥개석이 방형 평면으로 변화하였다. 석종형은 17세기 후반에 많이 세워졌다. 초반에는 범종의 형태를 충실히 모방하여 유곽과 유두가 표현되었다. 하대가넓고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안정감을 가지고 있던 석종형 승탑은 1700년을 전후로 변화가 나타난다. 탑신의 하대가 좁아지고 중앙부가 볼록해진 계란형으로 변화하여 안정감이 무너졌으며 표면의 조각도 사라졌다. 구형 승탑은 18세기 후반부터 건립이 증가하여 19세기에는 가장 많이 조성되었다. 구형 승탑은 특히 기단부가 다양한 변주를 보인다. 구형의 탑신과 팔각의 옥개석은 거의 변화를 보이지않는 반면, 기단부는 평면이 원형, 사각, 팔각으로 다양화되었다. 조선후기 호남지역에서 건립된 승탑에는 동.식물상이 많이 등장하여 주목된다. 그동안은 해안에 밀접한 지역적인 특징으로 이해되어왔지만, 이는 불교 대중화를 위한 불전설화의 유통과 연관되는 것으로 전각이나 수미단에서도 게.거북이.물고기.토끼 등의 장식문양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석종형 승탑에등장하는 범종 모티프의 등장은 호남지역만의 특징으로 石匠과 鑄鐘匠 등 동일문도 내 장인들간의 교류도 짐작하게 한다. 더불어, 승탑조영은 17세기에는 僧匠 과 私匠의 공동작업이었던 반면 18세기 넘어가면서 사장들이 주도하게 된 것으로파악된다. 가장 주목되는 석장으로는 해남 대흥사와 미황사에서 활동한 김해선과서막상으로 승탑 및 석비도 제작하여 당시의 경향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장인계층의 변화는 치석술의 약화, 장엄요소의 단순화 등과도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파악된다.
Abstract
The number of monk’s stone-stupa, built in the late Joseon dynasty, is over 1000. The regulation that only eminent monks, such as King’s Teacher(國師)and National Priest(王師), were allowed to build a stone stupa for commemorating their achievements, appeared to be faded in the late Joseon dynasty. As a result, building stone stupa for worshipping monk genealogy became common in this period. These phenomena seem to be triggered by Confucian authentic genealogy as well as ancestral worshiping rituals. Stone stupas, built in the late Joseon dynasty, can be classified to three types, Stone Building Style(殿閣形), Stone Bell-shaped Style(石鐘形) and Stone Ball Shape Style(球形). These variations are based on the presence of roof stones as well as the body shape of stone stupas. Stone Building Style seem to be influenced by 16 National Priest stupas in Songkwang-Temple(松廣寺),Suncheon, Jeollanamdo. With 16 National Priest stone stupas’ influence,Building Style’s body is elongated, and the size of basements is abated in the 17th century. In 18th Century, an octagonal shape of body as well as roof stone gradually changed to a square form. This shape shifting can be related to royal tombs’ stone lanterns’appearance. 18th century’s Stone lanterns in royal tombs were altered to a square form. Stone Bell-shaped Style was popular in the late 17th century. The initial examples appear to copy exact shape of the bell of the Buddhist temple. In order to this, artist meticulously carved the actual ornamental elements of the bell of the Buddhist temple to stone stupas’body. This Bell-shape stupa had maintained a stable appearance till 17th century. However, after 1700,Bell-shaped body’s lower part dimension was gradually dwindled, and the middle part dimension swelled out. As a result, Bell-shape turned to be an egg shape, and ornamental elements, which were used to be carved on the surface of the stupas, also disappeared. Stone Ball-shaped Style mainly built after the late 18th century, and since 19th century majority of stone stupas has followed this style. This style presented various variations in basement. Although Ball shaped body and octagonal roof maintained its original appearance, the basement varied with around, rectangular and octagonal shapes. In addition, small animal figures also attached to this basement in order to provide idiosyncratic identity to each stone stupa. In the late Joseon dynasty, we can find the written records of stone sculptors. Kim Haeseon’s works are found in Mihwangsa(美黃寺) and Daegeungsa(大興寺), all of whom located in Haenam, Jeollanam-do. He modified the octagonal shape of Building style's body as well as roof stone to a rectangular form. In addition he also crated various figural images such as turtle, crab,bird, lotus flower images to stone stupa’s basements. Seo Maksang organized in a stone stupa and stele building project with in Mihwangsa’s three monk sculptors. He built one building style and one bell shape style stupa. Like Kim Haeseon, Seo Maksang also inserted various animal and botanic images to the basement, but Seo Maksang’s image seem to contain more strong pictorial quality than Kim Haese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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