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몽전쟁기 西海道·北界에서의 海島入保策 추진 양태와 군사적 성격
The Characters for the Implements of Island Protection Tactics(海島入保策) in Seohaedo(西海道)·Bukkye(北界) of Goryo dynasty in the Period of the War against Mongol from the Military Point of 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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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대몽전쟁기 해도입보는 1231년(고종 18) 서해도·북계에서 최초로 실행되었다. 1231년 9월 서해도 黃州·鳳州의 鐵島 입보는 몽골군 선봉대의 황주·봉주 방면 침략을 회피하기 위해 그 당시 安北府로 북진하고 있었던 고려 삼군 지휘부의 승낙으로 급하게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있었다. 같은 해 10월 안북부전투를 앞두고 博州 등 북계 10여 州는 동시다발적·집단적으로 이미 지정된 청천강 하구의 전략해도에 입보하였다. 북계 제주에 대한 해도입보 명령을 내린 주체는 최우정권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1231년 후반부 서해도·북계에서 추진된 해도입보 경험은 1232년 강화천도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으며, 강화천도 이후 해도입보책은 고려의 유력한 대몽방어책으로 자리매김 되었다. 대몽전쟁기 서해도 방면의 해도전투는 席島·昌麟島에서 발발하였는데, 고려 측이 모두 승리하였다. 북계 방면의 해도전투는 艾島·神威島 등에서 발생하였는데, 애도전투에서는 고려 측이 승리하였으나 신위도전투에서는 섬이 몽골군에게 함락되었다. 신위도의 사례를 제외하고, 대몽전쟁기 해도전투는 고려가 몽골 수군의 침공을 대부분 격퇴시켰으며 전략해도들을 안전하게 지켜냈다고 볼 수 있다. 대몽전쟁기 서해도·북계에서 추진된 해도입보책은 楊廣道 이남 지역과 다른 군사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첫째, 서해도·북계 諸州에서 실행된 해도입보는 애초부터 고려무인정권의 강력한 군사적 통제를 받아 실행되었다. 둘째, 북계 전략해도에 입보한 주현민은 1261년(원종 2)에서야 출륙했을 정도로 장기간 해도에 머물며 전략해도를 지켜냈다. 셋째, 서해도의 전략해도들은 몽골 수군과의 해상전투에서 모두 승리하여 몽골군이 직접적으로 해상로를 통해 강화도를 침공하는 것을 차단하였다. 넷째, 북계의 주요 전략해도들에는 京別抄가 배치되어 방어력을 한층 강화하였다. 다섯째, 대몽전쟁 말엽인 1256년에 北界兵馬使營이 서해도의 창린도로 옮겨졌다가 이후 1258년경 석도로 移置되었으며, 對蒙講和 이후 元宗 때 최종적으로 북계의 椵島로 옮겨져 해도입보 및 대몽전투를 총괄 지휘하였다.
Abstract
Island Protection Tactics(海島入保策) during the Period of the War against Mongol was carried out for the first time in Seohaedo(西海道) and Bukkye(北界) of Goryo dynasty in 1231. The strategic experience of Haedoibbo(海島入保) that had been executed in these provinces had an considerable effect on the governments’ escape led by King into the Kanghwa island(江華遷都) in 1232. Island Protection Tactics that was propelled in Seohaedo and Bukkye in the Period of the War against Mongol, have several military characters distinguished with southern provinces of Yanggwangdo(楊廣道). The first, Haedoibbo in Seohaedo and Bukkye had come true throughout intensive military control of Choi Woo’s political power, from the start. The second, Juhyunmin(州縣民) who had entered to strategic islands of Bukkye, could come back to the homeland in 1261. They defended strategic islands from Mongol invasion, staying to designated islands for a long time. The third, Byeolchogun(別抄軍) that had stationed to strategic islands of Seohaedo, won to all naval battles against Mongol navy. As a result, Juhyunmin and defensive forces of strategic islands, prevented from Mongol navy’s coastal infiltration toward Kanghwa island. The fourth, Gyungbyeolcho(京別抄) dispatched to main strategic islands of Bukkye. Forward stationing of this unit strengthened defensive power of strategic islands of Bukkye. The fifth, Bukkyebyungmasayeong(北界兵馬使營) had been moved to strategic islands of Seohaedo and Bukkye in the end of the War against Mong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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