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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5~1256년 槽島_牙州海島 대상지 비정과 海戰의 影響

A Study on the Victory of Jodo(槽島)·Aju Island(牙州海島) Battles from 1255 to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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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1255~1256년에 단행된 蒙古軍의 海島侵攻은 韓國史상 유례가 없는 대륙침략세력의 水戰감행이었지만, 고려 측의 海島入保策에 의거한 抗蒙戰略의 유효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한 사건이었다. 1255년 12월에 치러진 槽島戰鬪는 몽고군에 의한 해도침공의 효시가 되는 전투인데, 당시 몽고군 본대 車羅大軍의 위치 및 이동경로와 전략적 가치를 분석해보았을 때 조도는 전라도 서해안 섬이라든가 전라남도 智島가 아니라 西海道의 椒島로 비정해볼 수 있다. 조도전투에서 고려 측이 승리함으로써 북계 戰略海島들이 고립되지 않았으며 몽고군의 江都 直攻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한편, 1256년 4월에 치러진 牙州海島戰鬪는 忠州道巡問使 韓就의 작전지휘에 의해 戰船 9척이 몽고 水軍을 격멸한 전투였다고 고증해보았다. 충주도순문사는 忠淸州道에 파견된 군사업무 중심의 巡問使였으며, 한취는 牙州海島에 머물러 있으면서 수군 병력으로 아주권역의 仙藏島를 구원하기 위해 아주 연안의 몽고군을 공격한 것으로 추정해보았다. 아주해도는 아산만으로 출입하는 통로에 위치하면서도 고려시대 당시 仁州 唐城郡 관할 島嶼가 아닌 섬이어야 하므로 대부도·선감도보다는 입화도(입파도)·육도·풍도 등이 이에 해당하며, 특히 지리적, 전략적 측면에서 입화도가 적합하다고 보았다. 아주해도전투의 승리로 선장도를 구원했으며 아산만 일대의 전략해도를 온전히 보호함으로써 漕運路 및 海上交通路를 지켜냈다는 데 의미가 있었다. 1255~1256년 해도전투에서의 승리는 高麗使 金守剛과 몽고 憲宗 사이의 外交戰에 있어서도 일정한 변화를 양산하였다. 對高麗强硬論者 憲宗은 고려에 대한 해도침공이 모두 좌절되고 蒙古軍 元帥府에서 내분이 일어나자 한 걸음 양보하여 사신 김수강의 “先 몽고군 철수, 後 君臣出陸” 요청을 수용함으로써 麗·蒙 사이에 임시적 講和가 맺어졌다. 결국 몽고군의 해도침공에 맞서 해도입보민·별초군·수군의 용전과 격퇴는 고려 사신 김수강의 외교적 노력과 결부되면서 몽고 제5-(2)차 침입을 종료케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Abstract

Mongolian Forces invaded the important Strategic Islands(戰略海島) of Goryo dynasty between the year of 1255 and 1256. On December of 1255, Mongol Army ambushed Jodo(槽島), but they were repelled by Byulchogun(別抄軍) which was formed by the peoples summoned in their own provinces and Ibbomin(入保民). Jodo had been considered that it was not Jido(智島) in Jeollado(全羅道) but Chodo(椒島) in Seohaedo(西海島). The victory of Jodo battle prevented it's isolation from Strategical Islands located in Bukgye(北界). Also, desperate fighting of Jodo Ibbomin forced Mongol Army to abandon it's invasion on Kangdo(江都). On April of 1256, in the Aju island(牙州海島), a battle broke out. Chungjudosoonmunsa(忠州道巡問使) Hanchui(韓就) destroyed Mongol soldiers who were stationed in Aju(牙州). The Island that Hanchui stayed at first, took over the land of Ibhwado(Ippado) which was located in the entry way of Asan bay(牙山灣). At that time, the Island that Hanchui occupied, was estimated as Seonjangdo(仙藏島) which was nearby Aju coast. The results of Aju island battle, Goryo dynasty secured maritime transportation systems and a sea lane of Chungcheong province. Such successes of naval battles in 1255~1256 had an effect on diplomatic war between Mongol Emperor Heonjong(憲宗) and Goryo envoy, Kim Sugang(金守剛). After naval battles with Mongol Army, Mongol Emperor Heonjong accepted the Goryo's suggestion of peace negotiations. The hardcore content of peace negotiations between Mongol Empire and Goryo dynasty, was integrated into withdrawal of Mongol Army and returning to the capital, Gaegyung(開京) of Kangdo Court(江都朝廷). Through temporary peace negotiations with Mongol Empire in 1256, Kangdo Court could maintain resistant tactics against Mong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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