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제(墓制)와 목관(木棺)을 통해 본 익산 쌍릉(益山 雙陵)의 의미
The Burial Type and Wooden Coffin of Iksan(益山) Ssangneung(雙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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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글에서는 익산 쌍릉의 묘제 및 목관의 특징과 그 역사적 의미를 살펴보았다. 쌍릉은 묘제와 장제 뿐만 아니라옥장신구와 같은 부장유물 그리고 익산과 무왕의 관계를 통해서도 무왕과 그 비의 능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익산에 백제 왕릉, 즉 무왕릉이 조영된 이유는 여러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우선 사비가 아니라 익산을 기반으로왕이 된 무왕이 익산을 중요시한 것은 당연하다. 또한 신라와의 관계에서 익산의 지정학적 중요성도 익산 경영의요인이 되었다. 익산에 도성의 경관을 이루는 주요시설을 세운 것은 천도 혹은 그에 준하는 행위의 준비와 일부 실행을 보여준다. 다만 귀족과 사서인(士庶人)의 거주구역 등 도시로 완성된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것은 그것이 완전하지 못하였음을 시사한다. 그렇지만 무왕 사후에도 익산의 중요성은 의자왕에 의해 유지되었다. 그것은 무왕 재위 후반기에 창건된 제석사 및 미륵사와 같은 대사찰이 백제 멸망 때까지 계속 운영된 점이나 사찰로 전용되었지만 왕궁 일원이 여전히 존속된 점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이러한 계승의식이 무왕과 그 비의 능을 익산지역에 조성하는 행위로 구체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Abstract
This article examined the burial type, wooden coffin and its historical significance of Iksan Ssangneung, the royal tombs of Baekje. Ssangneung was found to be the royal tombs of King Mu(武王) and queen through the burial type, wooden coffin, articles such as chinese jade ornaments and the deep relationship between King Mu and Iksan region. The reason of constructing Baekje royal tombs in Iksan region can be examined at many aspects. First, Iksan was a very important place for King Mu. Because Iksan was the basis of his political growth. Also, Iksan was a important geopolitical location in relation with Silla(新羅). For this reason, Iksan was developed in earnest. The construction of major facilities such as royal palace and temples in Iksan suggest the transfer of the capital from Sabi(泗沘) or the preparation and partial execution at least. However, the transfer of the capital was not completed. It can be seen as the incomplete city. However, even after King Mu Iksan was maintained as the important region by King Euja(義慈王). It can be seen through the maintenance of great temples such as Jeseoksa(帝釋寺) and Mireuksa(彌勒寺) built at later period of King Mu and royal palace area, even though royal palace had turned into the temple. These inherited consciousness may have been embodied in the act of building royal tombs of King Mu and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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