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일본의 총력전 구상과 ‘경제참모본부
A Study on Total War Plan and ‘Economic General Staff' of Japan in the 192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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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1920년대 일본에 등장한 총력전 구상과 그 체제의 형성과정을 군수국(1918-1920), 국세원(1920-1922), 자원국(1927-1937)이라는 ‘경제참모본부’(economic general staff)의 형성과 변화 과정을 통해 살펴보는데 있다. 1920년대는 총력전으로 상징되는 1차 대전의 전쟁 양상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 전체가 치열하게 고민하던 시기였다. 당연한 것이기는 하지만 군부가 가장 이에 민감하게 반응했고, 정치권도 여기서 예외가 아니었다. 물론 이들의 대응 양상은 일정 시각차를 보여주었다. 군부, 특히 육군은 총력전의 양상을 진지하게 검토했고, 이에 대한 대응을 천명했지만, 한편으로 일본이 현재 처한 공업 수준의 한계와 자원의 부족으로 단기결전과 속전속결이라는 단기 총력전 구상으로 귀결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육군 내부의 일련의 중견 장교들이 ‘총력전 장교’들로 규합되면서, 보다 장기적이고 심층적인 대응이 마련될 수 있었다. 총력전을 수행하기 위해 국력의 강화가 필요하다는 점에 군부와 관료 그리고 정치권은 모두 공감했고, 그러한 점에서 제도적으로 군수국, 국세원, 자원국으로 이어지는 경제참모본부의 설치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실질적 전시계획의 입안과 실행을 서둘러야 한다는 군부측의 의견과 이보다는 장기적으로 국력의 증강을 위한 도모해야 한다는 관료와 정치권의 시각 차이는 이들 경제참모본부의 활동에 일종 한계 또한 부여하고 있었다. 1920년대 시점에서 아직까지는 정치적으로 한계를 가졌던 군부는 정치권의 ‘장벽’ 앞에서 자신들의 주장을 거두어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점에서 1920년대는 ‘군부가 자유로운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었던 단 한 번의 시기’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1920년대 중반 이후 등장한 ‘총력전 장교’들은 이러한 장벽을 넘어설 수 있는 논리를 제공했고, 이는 1920년대 후반과 30년대 초반에 만주에서 우선 실행에 옮겨져, 이후 일본으로 ‘역류’하게 되었다. 경제참모본부도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그대로 반영하게 되었다. 초기 군수국-국세원에 비해 자원국은 그 역할과 기능면에서 확대된 것이었고, 1930년대 들어서는 군수뿐만 아니라 민수 및 경제 사안도 총괄하는 기획원이 등장하여 일본 총력전 체제의 핵심 기관으로 부상했던 것이다.
Abstract
This paper is to investigate the total war plan emerged in Japan in the 1920s and the formation process of such system through the formation of economic general staff including the 'Munitions Bureau'(軍需局, 1918-1920), the 'National Strength Evaluation Board'(國勢院, 1920-1922) and the 'Resources Bureau'(資源局, 1927-1937) and its history of change. The entire Japan was severely concerned about how to cope with the First World War symbolizing the total war in the 1920s. The military authorities had shown the most sensitive response and the political circle couldn't be excluded from such trend. In particular, the army sincerely examined the aspects of the total war and clarified how to cope with the war. However, such an approach was inevitably led to a total war plan due to the limit of industrial capability at that time and insufficient resources. Nevertheless, some middle-level officers in the army gathered momentum and formed a group of ‘the total war officers’ and presented a longer-term and more in-depth plan. The military authorities and the political circles agreed on the necessity to strengthen the national power for the total war. To this end, the Economic General Staff including the Munitions Bureau, the National Strength Evaluation Board and the Resources Bureau were established on the institutional level. However, the differences in opinions among the military authorities insisting to quicken the planning and implementation of short-term war plan and the political circle asserting to strengthen the national power in the longer term restricted the activities of the Economic General Staff. The military authorities which were politically restricted in the 1920s couldn't help withdrawing their insistence due to the political barrier. In this aspect, the 1920s could be the only period which could curb the military authorities. Meanwhile, the total war officers emerging since the late 1920s provided the theory enabling to overcome such barriers and their theory was earnestly implemented in the 193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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